햇순, 공동체성서연구

 

 


6/2008

 

 

 

 

 

 

 

 

 

 

 

 

  현장의 소리

 

하나님의 ‘아니다’없는 희망만 넘쳐나는 교회

 

  말씀과 세상(8)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이스라엘의 장구한 역사에서 70여 년 동안의 바빌론 포로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분수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바빌론 포로기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열사의 바람이 만든 모래산처럼 날아갔을지도 모릅니다. 포로 생활의 쓰라림이 모래알처럼 흩어진 이들을 견고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예레미야, 에스겔, 제2이사야 등 예언자들은 피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바빌론 포로기가 하나의 긴 터널과 같다면, 예레미야는 터널 초입에 속하여 그의 메시지는 조국의 비운에 대한 비탄으로 가득하고, 제2이사야는 터널 끝 부분에 위치하여 머지않아 시련이 그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여기에 비해 터널 한 가운데 위치한 에스겔은 돌이킬 수 없는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니다’ 없이는 희망도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던 중에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사람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선포하라는 소명을 받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유다 왕국의 철저한 심판을 선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조국의 파멸과 심판을 선포한다는 말인가! 그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국의 파멸은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니다’를 선포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희망이 뿌리내릴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할 때 역시 제자들도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박해의 불꽃이 눈앞에서 뱀의 혀처럼 춤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비장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이 억울하게 죽을지 모르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는 것, 그대들의 목숨을 빼앗는 자들이 있을지라도 결코 영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니 그대들은 몸과 영혼을 함께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마 10:28)

우리가 통상 말하는 ‘신앙 양심’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사람들이 ‘신앙 양심’에 따라 거짓을 향해 ‘아니오’를 말하고, 진실 앞에 정직할 때 그런 신앙이 시대를 정화하고, 하나님의 희망을 가꿀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 남의 이목이나 작은 이익에 연연하여 진실을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신앙 양심을 저버리는 파렴치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에 단지 생존하기 위해 ‘공중 권세’에 휘둘린 ‘불순종의 자녀들’(엡2:2)입니다. 그랬던 이들이 주님의 자비를 입어 참된 삶의 가치에 대해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불의를 향해, 위선과 기만을 향해 하나님의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하나님의 ‘아니다’를 외면하고, 하나님의 칭찬과 격려만을 즐겨합니다. 예배하러 모인 회중은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좋아해도 심판과 경고에 대해서는 싫어합니다. 설교자들 역시 우리 안에 잠복해 있는 죄악을 털어 내기를 꺼려합니다. 불의를 질책하는 것을 터부시합니다. 정의에 대한 무관심을 세련된 매너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아니다’를 ‘부정적 사고’로 매도하기도 합니다. 진리가 아닌 이익의 극대화가 설교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판정신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아니다’ 없는 희망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만일 네가 그들을 깨우쳐 돌이키게 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죽게 되면 그 피 값을 네게서 찾을 것이다”(겔 3:18)고 하셨는데, 오늘날은 세속 사회가 하나님의 ‘아니다’를 잃은 교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을 메울 때에 한국 교회의 내로라 하는 지도자들은 오히려 ‘촛불을 꺼라’고 윽박지른 게 한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세속의 열망에 집착함으로서 세상은 지금 공중권세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된 희망은 하나님의 ‘아니다’에서 발아하는 것임을 우리가 직시했으면 합니다.

 

 

 

 

 

 

 

 

 



 

  현장의 소리

 

환경주일과 푸른 금식

 

 

 

 

 

 

 

 

 

 

 





이숭리

권사,
생명의 쌀나눔 기독교운동 본부위원.
lsr47@hanmail.netail.net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와 각 회원교단들과 기독교 환경운동연대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시급하게 선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고 환경주일 주제를 정했습니다. 올해로 제 25회를 맞는 환경주일(6월 첫째주일)구호는 작년의 구호 ‘한국교회여 지구를 식혀라’에 이어 ‘우리 자녀들에게 살아있는 지구를’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환경재앙을 인식하고 교회와 기독인들의 삶 속에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감축을 생활화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영국정부의 스턴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이 6천억 달러로 세계 1.2차 대전 비용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세계 경제포럼에서 세계 각국의 환경지속성지수를 발표했는데 2002년 우리나라는 142개국 중 136위, 2005년에는 146개국 중 12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 뜻은 한반도가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어서 앞으로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켜 줘야 할 환경과 자원이 남아나지를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푸른 금식 - 에코다이어트 eco-diet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생태계를 위해서 우리가 금식할 것이 무엇인가? 환경을 살리기 위해서 다이어트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무얼 게걸스럽게 많이 먹어서 이렇게 몸같은 지구가 망가지고 고혈압에, 당뇨에, 간경화에, 암에 걸렸나? 얼마나 과식했나? 끝이 없습니다. 내 몸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 하는 금식말입니다.

부천의 지평교회는 매월 네 번째 주일을 CO² 다이어트 주일-자동차금식일로 정했답니다. 주일이면 교회 주변의 불법 주정차로 주민들과의 불편함을 넘어서 이제는 동행하는 가족 간에 새로운 기쁨과 창조질서보전을 위한 탄산가스 감소의 명분의 기쁨까지 톡톡히 맛보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2008년 환경주일에는 ‘차 없는 주일을 지킵시다’가 첫 번째 캠패인입니다.

종이금식도 있습니다. 우리가 종이를 사용하는 만큼 지구의 숲은 날마다 사라져 갑니다. 나무는 목재만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신선한 산소를 제공해 줍니다. 세계적으로 연간 3억3천만톤의 종이가 생산, 소비되고 이어(2002년), 56억 1천만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남한 땅의 3/4규모의 산림이 감소하고 있답니다. 나무를 베지 않고 종이를 쓸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재생 종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구입처: 환경상품홍보사업단,02-3461-4466) 이를 위해서는 폐지를 알뜰히 분리수거토록 하는 일이 종이금식입니다.

화학물질 금식은 더욱 절실합니다. 밥상위에 올라오는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되는 화학물질은 약 150여종 중 40종이 농약의 유효성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20여 종류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유기농 식품을 농사짓고 밥상에 올리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매주, 혹은 절기별로 생명의 쌀(유기농쌀)로 생명밥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전기금식도 있답니다. 봉천동의 광동교회, 용산구의 청파교회, 부천의 지평교회 등에서는 하늘에서 오는 선물인 햇빛을 받아 전기를 생산하며 하나님이 지으신 초록별 지구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치는 햇빛의 가로세로 1m의 면적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양을 석유로 환산할 때 130l나 된답니다. 남한 땅에만 1년간 쏟아지는 햇빛을 다 합하면 무려 800억 배럴(1배럴 = 159l)이 되는데, 이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석유 양의 100배나 된답니다. 사계절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건물 옥상에 모듈판을 설치해 전기를 만드는 시설입니다.(연락처: 에너지 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여러분의 교회에서는 환경주일을 지키고 계십니까?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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