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08

 

 

 

 

 

 

 

 

 

 

 

 

  강정규 연재동화

 

뿔테와 금테 (1)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한국아동문인협회장,
단국대 초빙교수.






 


동화작가 염소우 선생은 양손 손톱을 깎고 발톱까지 깎았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번엔 벗어놓은 양말을 빨았습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 흔히 하게 되는 버릇입니다. 양말을 빨아 널고 손수건까지 빨았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엔 담배를 한 개비 태워 물었습니다. 이북에서 만들었다는 ‘한마음’입니다. 담배를 몇 모금 태우다가 선생은 행장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전철 정거장으로 나왔습니다. 검정 두루마기에 검정 구두를 신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전동차에 올랐습니다.
빈자리가 없어 손잡이를 잡고 중간쯤에 섰습니다. 이미 앉은 이가 있으면 불편해 할까싶어 노약자 보호석을 피하는 것도 선생의 또 한 가지 버릇입니다.
앞자리에는 검정 두루마기에 검정 구두를 신은, 선생 또래의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다른 것이라고는 선생이 금테 안경을 쓴데 비해, 노인은 뿔테 안경을 썼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기를 안은 부인, 누런 봉투를 든 신사, 손 전화를 들고 졸고 있는 처녀, 행색이 좀 초라한 할머니가 앉아 있습니다.
전동차는 어느 새 노량진을 지나 한강 철교를 건넜습니다. 선생은 문득 대동강 철교를 생각했습니다. 황주와 대구 사과도 생각했습니다. 입 안에 군침이 돕니다.
그 사이 전동차는 용산과 남영역을 통과했습니다. 다음은 지하 서울역입니다. 보통 때와 같이 전동차 안의 형광등이 깜박 꺼지는가 싶더니 다시 켜지고, 전동차는 제 속력으로 빨려들 듯 터널 속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 전동차 안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동물들이 앉아있습니다.
앞에 앉았던 노인은 뿔테 안경을 쓴 염소로, 아기 안은 부인은 아기 캥거루를 주머니에 담은 어미 캥거루로 변하고, 누런 봉투를 옆에 낀 얼룩말, 손 전화를 든 채 졸고 있는 토끼, 머리털이 숭숭 빠진 면양, 그리고 돼지, 여우, 송아지, 기린과 낙타까지 보였습니다.
선생은 안경을 벗어들고 눈을 비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동차는 계속 달리고, 달리다 서면 또 몇 마리의 동물이 내리고 다른 동물들이 탔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역 이름이 ‘개성’이었습니다. 선생이 어리둥절해서 두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반갑습네다!” 하고 앞자리의 염소가 앞발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도 엉겁결에 오른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의 손이 염소의 오른발이었습니다. 창문에 비친 선생의 모습 또한 금테 안경을 쓴 염소로 변해 있었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폭우가 쏟아지고, 임진강과 한강과 한탄강까지 범람하여 수해를 겪게 됐을 때, 휴전선 끝자락 서해 외딴 섬에 아기 염소 두 마리가 떠내려 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너네들 쪽에서 둑을 쌓아서 우리네 쪽으로 물이 넘쳤어.”
임진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너네들 쪽에서 둑을 높이 쌓아서 우리네 쪽으로 물이 넘친 거야.”
한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양쪽이 다 마찬가지지.”
한탄강으로 떠내려 온 어미 염소가 한탄조로 말했습니다.
“너네들 쪽에서 시멘트로 담을 쌓아서 우리네 쪽으로 물이 넘친 거야.”
임진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너네들 쪽으로 돌담을 높이 쌓아서 우리네 쪽으로 물이 넘쳤어.” 한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담을 허물어야겠군.”
한탄강으로 떠내려 온 어미 염소가 한탄조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쪽엔 물도 사먹는다며?” 임진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쪽에서는 밥도 굶는다며?”
한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담을 허물어야지.”
한탄강으로 떠내려 온 어미 염소가 말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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