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2/2012

 

 

 

 

 

 

 

 

 

 

 

 

에니어그램영성(131)

 

# 3번 유형 : 사무엘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

제공 :
공동체성서연구원


에니어그램 격언






 


1. 기도하는 사무엘

조슈아 레이놀즈 Joshua Reynolds의 1723년 작품 ‘어린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성화로 꼽힌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아들로 이름도 shamma el 즉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뜻의 사무엘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고뇌와 마음고생은 다른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이 보기에 한나가 술에 취해서 말한다고 오해하였을 만큼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서원기도까지 하였다.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기만 바란 것이 아니라 아들을 점지하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노라 구하였다. 아들을 주님께 바치면서 드린 한나의 기도는 후일에 마리아가 드린 기도의 패러다임이라 할 만하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기에 소중하였을 뿐 아니라 아이의 한평생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였기에 더욱 더 애지중지하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기만 하여도 #3번 유형으로 크는 법이다. 하물며 하나님께 아이의 한평생을 바치기로 마음먹고 키우는 어머니가 얼마나 아이의 장래를 내다보고 존중하며 키웠을까는 너무나 자명하다. 어머니의 사랑과 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긍정적 관계에서 자라난 아이는 그만큼 어머니를 사랑하며 존경하게 되기에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어머니를 닮으려 한다.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를 보고 배우는 사무엘이기에 어려서부터 기도가 생활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레이놀즈의 예술적 상상력과 일치하는 점이다. 그래서 어린 사무엘의 모습은 기도하는 사무엘로 그려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때 말보다 행동과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녀가 독서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먼저 독서할 것이요,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기도할 일이다. 부모의 모습이 각인되고, 모범을 따르기 마련이다. 한나의 기도가 사무엘의 기도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도 모습과 뜻이, 형식과 내용이 한데 어우러져야 온전한 법이다. 사무엘의 기도 가운데,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삼상3:10)라고 한 것은 경청하는 기도의 원형이다. 대개 사람들은 기도할 때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그친다. 응답은 바란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사무엘이 주님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은 단순히 기도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성과 진실을 나타내준다. #3번 유형이 남에게 잘 나타내고, 잘 보이고 싶은 과시욕에 붙잡히기 쉬운데, 사무엘은 일찍부터 신실하게 배우며 자라고 있었음이 기도에서도 나타나 보인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곱씹게 된다. 에니어그램 인성으로 말하자면 만 6세에 성격 유형이 나뉘어지고 결정될 뿐 아니라 그때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방향을 결정하는 만큼 중요하다. 바로 정향 定向 되었다면 계속 바르게 가도록 도울 일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바로잡아야 한다. 빠를수록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성격이 운명이다’ Ethos Anthropoi Daimon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고 은총을 입어 임신하게 되었고, 태중에 있을 때도, 출산과 양육과정에서도 기도로 컸고, 어린 나이에 엘리 제사장에게 배우고 훈련받은 만큼 기도하며 자랐으니, 기도하는 사무엘은 신실한 사무엘로 자라날 수 있었다.

2. 소명을 살리는 사무엘

‘주께서 한나를 기억하여 주셨다’(삼상1:19)고 기록되었듯이 한나가 은혜를 입어 임신하게 되었다. 아들을 출생하였을 때 한나는 서원한 것을 지키려 아이를 키웠다. 아직 어리지만 떼어놓을 나이가 되니까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주의 집으로 갔다’(삼상 1:24)고 하였다. 주님께 사무엘을 바친 것은 결국 엘리 제사장에게 수종들며 그에게서 배우고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보면 사무엘은 나실인이 된 것이다.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나실이 되면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성별하여 헌신하게 된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뿐더러 포도나무에서 나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스스로 절제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며 헌신하는 생활을 한다. 이른바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일에 예수가 ‘나자렛’ 사람이라 불리운 것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도 참작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나 ‘나실’ 사람이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순종할 것을 생각하기로 말하면 나실인은 보통 사람에게 모범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결국 사무엘은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하나님의 사람은 소명을 감당하고 그 소명에 충실하게 맞춰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표본적인 인물이 된다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소명과 성격을 일찍이 발견하고 거기에 맞춰 살기로 말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다. 사무엘은 그런 면에서 본보기가 된다. 랍비전승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리하고 똑똑하였다고 한다.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이 그렇게 똑똑하면 자칫 나서기 잘하고, 자기를 과시하며 잘난척하기가 쉽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삼상 2:26)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그만큼 소명을 감당하며 신실하게 큰 것을 엿볼 수 있다. 한나의 기도와 마리아 찬가를 대조하여 볼 수 있듯이, 이것을 ‘아기는 자라며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찼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눅2:40)고 기록된 예수의 어린 시절과 연결시켜 보게 된다.

사무엘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기도하고 준비하며 임신한 데서 시작하여, 임신 기간에 기도하며 태교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시하고 출산 후에 양육과정에서도 하나님께 바칠 아이로 사랑과 기도로 키우며 하나님의 뜻이 스며들도록 기른다면, 어떤 아이인들 사무엘처럼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소명을 감당하기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세상에 난 목적과 인생을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류를 사랑하는 것임을 발견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르지예프도 에니어그램을 배우는 목적이 바로 ‘인류를 위해 사는 것’이라 한 뜻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무엘이 소명을 감당하며 자라난 모습이 성서에서 발견되는 기록이 있다. 즉,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삼상 3:19). 실로 놀라운 일이다. 스스로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성취하도록 은총으로 도우셨다는 표현일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빠져들 유혹의 함정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 때 #3번 유형이 가장 신실하게 살면서 결과적으로 성공하며 성취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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