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2/2010

 

 

 

 

 

 

 

 

 

 

 

 

에니어그램영성 (107)

 

# 9번 유형 : 아브라함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

제공 :
공동체성서연구원


에니어그램 격언






 


1. 길을 떠나는 아브람

길을 떠나는 일은 사람들이 흔히 동경하면서도 막상 떠나려면,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일상의 삶을 훌쩍 떠나는 일은 더욱 어렵고, 삶의 익숙한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물 없는 곳에서, 그것도 집이 나무로 된 곳이면 흰개미들이 모조리 갉아 먹는 참말로 살기 어려운 고장도 떠나지 못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것은 꿈과 모험을 동시에 요구한다.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 위에 믿음이 무엇보다도 요청되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첫 번째로 인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가해지는 아브람이 12:1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12:4)고 성서는 기록하였다.

척박한 땅이라도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어려운 터에, 아브람이 떠난 곳이 어떤 곳인가? 고대 인류 문화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수메르 문명이 꽃피웠던 곳, 당시 세계에서는 가장 살기 좋은 곳을 떠난 것이 아니었던가!

모든 사람에게 상상조차 힘든 일이지만, 성격 유형 가운데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은 길을 떠나고 이사하고 움직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관계, 새로운 일 모두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에 쉽지 않다. 새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일상에서도 남이 찾아와 인사를 청하면, 수인사는 하여도 좀처럼 자기편에서 먼저 다가가는 일은 드물다.

에니어그램 9번은 4번이나 5번 유형과 함께 움츠러들고 위축되기 쉬운 사람들이다. 특히 9번 유형은 관성의 법칙에 강하다. 한번 눌러 앉기로 말하면, 계속해서 자리를 고수한다. 웬만하면 이사도 안 가고, 직장을 옮기는 일 같은 것도 잘 안 한다. 그런 만큼 보존하는 데는 강한 사람들이다. 사람을 한번 사귀면 변함이 없다. 평화를 사랑하고 너그럽고 관용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9번 유형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깃든다. 참고 견디는 마음이 크고, 양보도 잘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잘 끌어안고 품는다. 어떤 것도 수용하는 힘이 크기에 ‘컨테이너 타입’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적극적으로 보면, 평화를 만드는 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극적으로는 갈등을 기피하기 위한 몸짓임을 알 수 있다.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은 갈등을 기피하는 성향 때문에, 우유부단하거나 미루기를 잘하고, 뭔가 결단력을 보이고 선택을 하려면 스트레스가 생긴다. 이것은 격정이 나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저절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기다려도 해결이 안 되면 누군가 자기 대신에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이 직접 나서지만, 대개의 경우는 때가 늦은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시간관 자체가 독특하다. 이를테면, 머릿속의 시계가 출발 시계는 없고 도착 시계만 있다. 대개는 도착 시간만 생각하다가 떠나서 막상 도착하고 보면 시간이 늦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으레 30분 늦는 사람으로 호가 나있다.

그러나 ‘나는 지각을 모른다.’는 9번 유형들을 때때로 만난다. 매우 부지런한 9번이라 하겠다. 이들은 관성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행동의 관성이다. 부지런을 떨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의 끝없는 순례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2. 바로 왕을 속이는 아브람

아브라함은 세계의 삼대 종교인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공통적으로 믿음의 조상이다. 그런 만큼 ‘믿음’하면 아브라함이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비록 이름이 바뀌기 전 아브람일 때의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프레드릭 빅흐너가 표현하듯이 일종의 팔불출이다. 이렇게 그는 말한다. ‘세상에, 평생을 두고 남에게 국 국물을 쏟으며 사는 사람을 슐리멜이라 하고, 밤낮 국 국물이 쏟히는 사람을 슐레모츨레라 한다면, 아브라함이야말로 슐레모츨레이다.’

이런 모습이 제일 먼저 드러난 곳이 이집트였다. 성서의 기록을 보자.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아리따운 여인인가를 잘 알고 있소.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을 살릴 것이오.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자기 생존 본능의 표현인 것은 인정한다. 그야말로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보존형인 9번에게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부인을 누이라 속이며, 그 때문에 대접도 받고 덕 좀 보겠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도 내친김에 한발 더 나가는 관성을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에니어그램 일반을 보면, 속임수는 3번 유형의 격정이다. 그런데 9번 유형인 아브람이 속임수를 쓴다. 9번 유형이 퇴화하면 6번 유형의 격정 속으로 들어가서 공포와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9번이 반격정에 사로잡히면 3번 유형의 격정 속으로 빠지는데, 이는 퇴행보다도 위험한 지경이다. 아브람이 바로 여기에 빠진 것이다.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은 편안한 사람으로 순종적이며 남들과 잘 지내려는 것이 강하다. 남에게 의존적이어서 남을 이상적으로 보며 남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산다. 상황이 뒤집히는 것과 어떤 종류의 압력이라도 두려워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서 길을 떠나기는 하였으나, 아브람이 죽음을 생각할 만큼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면의 갈등을 느꼈을 때 흔들렸던 것을 본다.

평소에 건강할 때는 그렇게도 침착하고 안정되어 있고 평온하던 9번 유형이 평상심을 잃고 자기 고착에 빠져서 강박충동에 떠밀리기 시작하면 아브람에게서 나타난 것처럼, 초점의 대상이 되는 것이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내켜하지 않으며, 무관심하고 게으르게 머뭇거리기를 잘하며 문제가 제풀에 꺾여 사라질 때까지 발뺌하며 피한다. 현실을 ‘꺼버리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더 밀리면 9번 유형은 현실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에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에니어그램 8번, 1번 유형들과 함께 관계와 행동 중심이 강한 9번 유형이 그 행동 중심을 잘못 쓰게 되면 돌출 행동이나 돌출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할 말, 안 할 말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152-815 서울 구로구 개봉3동 341-21 2층   Tel 02)312-6803, Fax 02)374-7277
  cbs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