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

 

 

 

 

 

 

 

 

 

 

 

 

  말씀과 삶의 뜨락

 

다툼의 시대에 나라 지도자의 역할

 

  말씀과 세상(28)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지금 우리가 맞이한 시대를 ‘거대한 변화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한 가지도 소용돌이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큰 다툼의 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큰 변화에는 으레 힘과 힘이 충돌하고, 가치관이 충돌하고, 이권이 충돌하고, 책임과 비용을 놓고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경제는 전에 없던 불확실성 가운데 있습니다. 악몽과도 같은 테러와의 전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초강대국 미국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변방 국가였던 중국과 인도의 부상은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살던 인간의 삶은 한계점에 이르렀습니다. 나라마다 자원 확보 경쟁이 가히 전쟁 수준입니다. 게다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책임과 비용을 놓고 산업화 선발국과 후발국 사이에 공박이 치열합니다. 우리 내부 역시 태풍전야와 같은 다툼이 시한폭탄처럼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시금석이 될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여부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실업자의 증가와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불안이 증폭될 조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맞이한 시대는 ‘거대한 변화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세기적 다툼이 예고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출애굽 이야기에서도 큰 다툼을 목격합니다. 무리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이동 중에 있었습니다. 큰 변화의 와중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의 꿈과 이상은 고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가 않았습니다. 마실 물이 없자 저들의 입에서는 당장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찌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17:2)며 모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모세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우리의 꿈과 이상이 아무리 고상할지라도, 당장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다툼은 ‘이상’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옵니다. 이상은 누구에게나 고상하고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노력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책임지지 않고도 예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누구에게나 치열합니다. ‘현실’은 얻으면 살고 잃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은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목마름의 현실 앞에서 우리가 유념할 게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었다는 것이고, 모세는 하나님의 현존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큽니다. 목마름의 현실: 그것은 믿음과 불신을 가르는 분기점이 됩니다. 그리하여 목마름의 현실은 항상 ‘시험’이 됩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목마름 앞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현존에 복종시킬 수도 있고,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오로지 승자가 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외면한다는 것은 평화를 외면하는 것이요, 세계와 조화롭게 사는 걸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승자 독식과 억압과 착취와 배제와 전쟁의 길입니다.

세상은 다툼의 길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조화로운 세계, 화목한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고. 바울은 다툼밖에 알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보라고 합니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을 외면함으로서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고 했습니다. 다툼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근원(구원)에서 답을 구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구원은 일차적으로 내 영혼이 평화를 누리는 길이지만, 크게는 세계가 다툼을 그치고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이쯤해서 필자는 민수기가 전하는 무리바 사건 하나를 상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다툼에 대한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민20:12). 이유야 어찌 됐던 모세와 아론은 지도자로서 백성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범국가적인 다툼의 와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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