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7/2012

 

 

 

 

 

 

 

 

 

 

 

 

  현장의 소리

 

‘하나 됨’을 위하여

 

  볍씨와 에니어그램(7)

 

 

 

 

 

 

 

 

 





조순애

광명YMCA볍씨학교
my-lord__jesus@hanmail.net






 


언젠가 아이들한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때때로 ‘아니, 왜 저 사람 맘은 내 맘 같지 않을까?’ 하며 속상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자리매김한 작은 습관 하나 때문에 답답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면? 아마 그런 상황 역시 견디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듭니다. 뭔가를 배우기도, 삶의 의미를 느끼기도 쉽지 않겠지요. 또 얼마나 자주 ‘발끈’, ‘울컥’ 할까요? 보통 나와 닮은 사람한테서 내가 갖고 있는 단점이 발견될 때 사람들은 아주 예민해지잖아요.

아이들과 실제 생활에서 쓸 수 있을 만한 가구를 만들 땐, 미끈한 못 대신 나사못을 사용합니다. 나사못으로 나무를 결합하는 게 몇 배 더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나사못의 오목하고 볼록한 부분이 나무와 꼭 맞추어지면, 나사못의 울퉁불퉁함은 강력한 힘이 됩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물질의 근원인 원자의 세계에서부터 비슷한 원리-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힘을 합쳐 온전함을 이루는 것-가 적용되는 듯합니다. 서로 다른 개수의 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원자들은 자연계에서 혼자 있기보다는 둘 이상 모여 제일 외곽궤도에 있는 전자를 주고받거나 공유하면서 안정된 구조를 형성하려 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 다른 건, ‘개개의 하나’를 넘어 ‘경계 없는 커다란 하나’로 나아가려는 섭리의 결과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을 하면서 우리는 나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들의 조합과 역동을 고민하게 됩니다. 지난 5월 아이들과 에니어그램 수련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 중에 우리 반 아이들의 기본 유형은 3번, 4번, 7번, 공교롭게도 이렇게 세 가지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잘못 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유형들의 성격을 좀더 뚜렷이 갖고 있다는 증거이긴 하니, 3-4-7번의 경향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일 터. 평소 우리 반한테 좀 부족하다 싶었던 점들이 떠오르면서 왠지 아쉬운 마음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 우리 반엔 3번, 4번, 7번밖에 없어. 심지어 교사까지도!
했더니, 한 녀석이
“선생님, 다음에 반 짤 땐 에니어그램 번호를 고려해야겠어요.”
특유의 눈웃음과 함께 이렇게 화답하더군요.

볍씨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할 때면 보통 작은 모둠을 꾸립니다. 모둠 구성원을 짜는 때처럼 볍씨 안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은 드문데요. 아이들은 누가 나와 같은 모둠이 되었나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합니다. 아이들은 경험상, 그 활동이 어떠하냐보다 누구와 함께 모둠을 꾸리게 되느냐가 자기한테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여행과 같이 준비 과정과 실행 과정의 기간이 긴 경우, 아이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모둠을 어떻게 짤 것이냐를 두고 논의합니다. 이 와중에 서로 간에 갖고 있는 감정이나 친구들 사이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지요.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점차 어떠한 조합이 서로를 더 성장시킬 것인가, 상생하는 역동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것저것을 따져봅니다. 그리고 고민한 만큼, 자기 스스로 그동안 고수해온 틀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애를 쓰기도 하지요.

하나의 악기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거대하고 웅장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갖가지 빛깔을 가진 사람들이 제 소리 제 몸짓을 건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갈 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밝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되지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서로 삑삑 대며 아웅다웅하는 시기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가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로 인해 더 온전해지리라는 것을. 그래서 절망이 틈타는 그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더불어 살기’에 도전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끝)

 

 

 

 

 

 

 

 

 





 

  현장의 소리

 

성령의 생각

 

  성서연대 (7)

 

 

 

 

 

 

 

 

 





김 종 우

목사
서탄교회
kjw2125@hanmail.net






 


인격적 존재인 성령의 인간을 향한 생각과 역할은 무엇일까?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서를 살아계신 말씀으로 읽는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롬 8:22)은 모든 생명을 하나의 유기적 존재로 바라보는 생태학적 시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김기섭: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이요 법칙인데 현실에서 심은 대로 거두어드리지 못하며 일한만큼 얻지를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타락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통치영역은 세계인데 인간이 영혼의 문제에만 집착할 때 세계, 자연과 사회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간과할 수 있다.

우철영: 우리가 과연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나? 피조물들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기 위하여 척박한 땅에서조차 몸부림을 치는데 인간의 욕심에 의한 무분별한 난개발과 자연에의 착취는 중단되며 회개함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질 때 자연의 고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김명신: 사회가 조직적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에서 경제의 분배가 중요하듯이 자연과 인간 사이에도 각자의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의 분배가 이루어져야한다고 본다. 자연을 단지 인간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범신론적 생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떤가? 모든 사물을 신적인 존재로 바라볼 때 모든 자연물이 가치 충만한 것이라고 여겨지리라 생각된다. 이제 인간은 자연과 동반적 관계임을 직시해야 한다.

김종우: 현대신학의 영성의 중요한 내용은 특별히 착취당하고 억눌린 사람들, 여자, 제 3세계 사람들, 피지배계층의 회복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 세계가 당연히 포함된다.

김기섭: 고통하는 자연과 더불어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해서 “속량해 주실 것을 고대한다”라는 성경의 의미를 오늘 교재는 속량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현재의 삶의 상태로 언급했지만 더 나아가서 훗날 마지막 구원의 완성인 부활의 모습을 확신하는 미래지향적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철영: 속사람이 신음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가?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아무리 척박해도 희망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령과 교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게하며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게 하는 힘 그것이 성령의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윤병선: 성령의 생각은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다. 성령은 말 그대로 helper인데 기도를 통해서 그 도움을 경험할 수 있다. 월남전 참전 때 사선을 넘나드는 그 전쟁터에서도 편안함을 주시더라. 그러나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약함은 인간의 본질이다. 약함을 인정할 때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신다.

김창택: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영적존재로, 성령의 뜻을 따라 살려고 힘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를 도울 때 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 성령이 거할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성령이 거할 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영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김종우: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껏 우리의 신앙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나를 위해, 나의 가족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는 이제 남의 고통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을 넘어 자연의 소리도 들어야한다. 로마서 8장 17절 이하의 “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하나님 아들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은 십자가의 은총은 단지 인간의 구원을 넘어 세계의 고통에 대해 소망을 주는 말씀이다. 십자가의 은총과 성령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연대하며 돌아보게 하는 힘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현장의 소리

 

난장의 날 Free Day!

 

  현장의 소리 - 교육

 

 

 

 

 

 

 

 

 





이 은 재

목사
산돌학교 교장
kszukero@hanmail.net






 


산돌학교 친구들이 말하는 ‘학교에 바란다!’ 1위는 ‘자유’입니다. 산돌학교 철학의 첫 번째가 자유입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그렇듯이. 또 실제 일반학교에 비하면 산돌 친구들이 누리는 자유는 비교 불가입니다. 그럼에도 산돌 친구들은 자유를 외칩니다. 자유란 누릴수록 점점 더 커지는 가 봅니다. 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산돌 친구들은 가끔 일탈을 합니다. 고작 한다는 것이 담 너머 편의점에 가 인스턴트 사먹고 들어오는 것인데, 아마 월담 자체가 모험과 스릴과 자유에의 충동을 채워주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일탈에의 만족을 느끼는 친구들은 꼭 교사들의 눈에 포착됩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자기성찰 프로그램을 하게 됩니다. 자유에의 갈망을 채워줄 방도를 찾다가 어느 날 교사들이 전환적인 발상을 했습니다. 마음껏 일탈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난장의 날 Free Day!가 처음 시도되었습니다.

난장의 날은 학생회가 주관하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친구들이 내세운 난장의 날 목표는 - 1) 한 번의 일탈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2) 규정과 규칙에 대한 저항감을 벗어남으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사고를 전환하는 기회를 갖는다. 3) 규칙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학교생활에서 지켜야할 책임감을 기른다. - 는, 멋진 내용이었는데, 기획팀과 진행팀이 나름대로 몇 가지 지켜야할 규칙도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왔습니다.

친구들의 표현에 의하면, 매일 이렇게 지내면 전혀 즐겁지 않을 일탈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댄스파티부터 시작해서 밤늦도록 이어진 축제의 밤, 밤새 수다 떨기, 늦잠, 삼각 김밥과 컵라면과 사이다로 시작한 아침식사, 방에서 밥 먹고 뒹굴 거리기, 온갖 종류의 게임들, 컴퓨터 게임대회, 영화보기, 게임 중심의 이벤트 부스들,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낄낄거리기, 치킨 피자 자장면 시켜먹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빈둥거리기 등등, 하여튼 온갖 아이디어를 총동원해서 일탈을 즐겼습니다. 물론 교사들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난장의 날이 끝나는 시간, 친구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즐겁고 또 즐거운 행사라고 친구들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친구들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날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밥 어머니들이 만들어 주신 식사를 받으면서 아이들은 와우, 함성을 올렸습니다. 매일 먹던 산돌의 밥상이, 어머니들이 만들어 주시는 밥상이 빠졌던 것입니다. 하루 만에 다시 만나는 밥상에서, 일상에서, 친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했고, 일탈만큼 소중한 그 무엇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성서에 탕자의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일탈을 자유라 생각하고 떠났던 둘째 아들은 일탈에 지쳐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다시 돌아온 그 자리, 일상은, 그 자체가 자유였던 것을 둘째는 알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식탁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산돌친구들의 일탈이 일상의 자유를 더 깊이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올해 처음 시작한 Free Day는 충분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뒤 평가회에서 난장의 날은 하루면 족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는 것을 보면, 산돌친구들이 일탈 자체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일탈을 통한 참된 자유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유, 예쁜 놈들!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 속에서 활짝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일탈은 가끔은 저질러 볼 지혜로운 영성의 길이 아닐까요? 독자들의 Free Day를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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