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7/2012

 

 

 

 

 

 

 

 

 

 

 

 

영혼의 언어와 논리

 

소년과 구르지예프(2) Boyhood with Gurdjieff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프릿츠 피터스
Fritz Peters






 


나의 어린이다운 목표는 순응하며 기쁘게 해주는 것이었기에, 그의 대답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누구에게라도 삶을 어렵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끝까지 안 해야 할 텐데, 내가 보기에 이미 충분이 어렵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여기에 대하여 아무 말도 댓구하지 않았고, 그는 계속해 말하면서, 내가 ‘모든 걸’ 배우는 데 더하여 언어, 수학, 여러 가지 과학 등등 배울 기회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자기의 학교는 보통 학교와는 달라서, ‘다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을 많이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자애롭게 두드려 주었다.

‘자애롭게’라는 말을 내가 쓰는 까닭은 그 제스처가 당시에는 나에게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어른에게 ‘예언자’, ‘선각자’ 또는 ‘메시야’로 생각되는 이 사람에게 ‘승인’을 받는다는 것, -이렇게 소박하고 다정한 제스처로 승인받는다는 것은 예기치 못했던 일이며 가슴을 뜨겁게 한 일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면서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뭘 좀 해줄 수 있겠냐?’

그의 목소리와 나에게 비친 그의 인상은 무섭고 동시에 흥분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나는 궁지에 몰린듯하면서 동시에 도전을 느꼈다. 나는 한 마디로 단호하게 ‘예’ 하고 대답했다. 그는 우리 앞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을 향하여 제스처를 하며 ‘너 이 잔디가 보이지?’

‘예.’

‘너에게 일감을 준다. 너는 매주 기계를 가지고 이 풀을 깎아야 한다.’

나는 잔디밭을 바라봤다. 나에게는 무한대로 이어지듯이 잔디가 퍼져있었다. 그 일은 내가 평생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주일에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또다시 나는 말했다. ‘예.’

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 번째 쳤다. ‘네 하나님을 두고 약속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심각하였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하겠다고 약속해야 된다.’

나는 그를 쳐다봤다. 호기심과 존경심과 상당한 경외심을 가지고. 어떤 잔디밭도?이런 것들조차도(네 개나 있었다) 전에는 나에게 중요해 보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약속합니다’ 하고 진심으로 말하였다.

‘단순한 약속이 아니야’ 그가 되풀이하였다. ‘무슨 일이 생겨도, 누가 너더러 그만두라 해도 이일을 하겠다고 약속해야 돼. 인생에는 많은 일이 생길 수 있는 법이야.’

그의 말 때문에 잠시 동안 이 잔디밭을 깎는 문제를 두고 심한 논쟁을 하는 광경을 떠올렸다. 이 잔디밭과 나 때문에 대단한 감정적 드라마가 생길 것을 예견하였다. 다시 한 번 나는 약속하였다. 그때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심각했다. 필요하다면, 잔디 깎는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몸 바쳐 일하겠다는 나의 느낌은 명백하였고. 그는 만족한 듯이 보였다. 월요일에 일을 시작하라고 한 뒤에 나에게 가도 좋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그 때의 감각이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곁을 떠나면서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 사람인지, 잔디밭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해선지는 상관이 없다. 나의 가슴은 보통 때의 크기를 넘어서 부풀어 올랐다. 나 같은 어린이가, 어른들에게 속한 세계에서 별 대수롭지 않은 내가 분명히 중대한 일을 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프리에레’는 우리가 대체로 쓰던 이름이었는데, 즉,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 연구원’은 무엇이었나?

열한 살 먹은 나는 그것이 단순하게 일종의 특수학교로 이해하였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가, 새 예언자, 위대한 철학자로 알려진 인물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구르지예프 자신은 규정하기를 그것은 더 큰 바깥세상의 조건들을 재생산할 작은 세상을 세울 뜻을 시도하는 것이 여러 일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그런 조건들을 만드는 주목적은 학생들을 장래의 인간, 인생 그리고 경험을 위하여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대체로 읽기, 쓰기, 산술 같은 여러 가지 재능을 얻게 하는 보통 교육에 전념하는 그런 학교가 아니었다. 그가 가르치려 했던 단순한 일은 인생 그 자체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구르지예프 이론을 접했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필요를 느끼는데, 이 ‘연구원’을 서술하는 것은 내가 소년으로서 보고 이해했던 것을 말한다. 구르지예프의 철학 때문에 그에게 관심을 가졌거나 매력을 느꼈던 사람들을 위하여 그 연구원의 목적이나 의미를 규정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 그것은 단순히, 확실히 말해서, 내가 알고 있었던 학교와는 다른, 또 하나의 학교였다. 본질적인 차이는 ‘학생들’ 대부분이 어른들이었다. 예외라면, 나와 내 동생, 구르지예프 선생의 조카들과 친 자녀들이었다. 모두 해서 어린이들은 많지 않았다. 내 기억에 고작해야 모두 열 명 정도였다.

학교의 일과는 제일 작은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똑같았다. 아침 여섯 시에 커피와 마른 토스트를 먹는 조반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곱 시부터는 각자가 맡은 일이 무엇이든 각자가 알아서 했다. 일손을 멈출 때는 식사 시간 뿐이었다. 정오에 디너(보통, 수프, 고기, 샐러드 그리고 어떤 종류든 달콤한 푸딩), 오후 네 시에는 차, 그리고 저녁 일곱 시에 간단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 후에 여덟시 반에 ‘공부방’이란 곳에서 체조와 춤이 있었다. 이 일과가 일주일에 엿새 동안은 표준이었다. 예외는 토요일 오후에 여성들은 터키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다. 토요일 이른 저녁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이나, 주말이면 종종 찾는 방문객들을 위하여 춤 솜씨가 훨씬 좋은 사람들의 시범이 있었다. 시범이 끝나면 남자들은 터키 목욕탕엘 갔다. 목욕이 끝나면 ‘잔치’나 특별식이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늦은 식사에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웨이터나 주방 도우미로 참여하였다. 일요일은 휴식의 날이었다.

학생들에게 맡겨진 일감은 어김없이 학교의 실질적인 기능에 관한 것이었다. 정원 가꾸기, 취사, 청소, 가축 돌봄, 우유 짜기, 버터 만들기 등. 이런 일은 거의 항상 그룹 활동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그룹 활동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면, 주관적인 인간적인 갈등이 빚어진다. 사람 사이에 갈등은 마찰을 일으키고, 마찰은 각자의 특징을 드러내고, 잘 관찰하면 ‘자아’를 드러낸다. 이학교의 주목표 중 하나는 ‘남들이 보듯이 너 자신을 보는 것’인데, 자신을 본다는 것은 이를테면,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보는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판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단순히 ‘보는 것’이다. 항상 수행하도록 짜여진 실습은 어떤 육체적 활동을 하든지 ‘자기 관찰’ 또는 ‘그것에 반대하는 나’ - 즉, ‘나’는 (잠재적)의식, ‘그것’은 몸, 즉 도구를 의미한다.

처음 시작할 때, 그리고 이런 이론이나 실습의 어떤 것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내가 맡은 일, 어떤 의미에서, 나의 세계는 내가 나의 잔디밭이라 부르게 된, 풀을 깎는데 완전히 집중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내가 기대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생기가 넘치는 일이었다.

나와 ‘인터뷰’한 다음 날, 구르지예프 선생은 파리로 떠났다. 그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파리에 가서 지내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는데, 보통은 비서인 마담 드 하트만이나 다른 몇몇이 수행하였다. 이번에는 보통 때와 달리 그가 혼자서 갔다.

내 기억에, 월요일 오후가 돼서야 -구르지예프 선생이 떠난 시간은 일요일 저녁- 그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학교의 어린이들에게까지 퍼졌다. 우리는 처음에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 다음은 크게 다쳐서 살아나기 힘들 것 같다는 소문이었다. 공식적인 발표는 권위 있는 사람에 의해 월요일 저녁에 발표되었다. 죽지는 않았으나 심한 상처를 입어서 죽을 지경으로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발표가 주는 충격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바로 ‘연구원’의 존재가 전적으로 구르지예프란 존재에 달려 있었다. 각자 개인에게 일감을 맡겨주고, 그 순간까지 학교 운영의 세밀한 부분까지 감독하였다. 그와 함께 러시아에서부터 온 나이든 학생들이 주도하는 덕분에 우리는 계속해 식사 때를 거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지는 몰랐으나, 내 마음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잔디를 꼭 깎아야 한다고 그가 나에게 말했던 것이다. 나에게 안심이 되었던 것은 그가 나에게 확실하게 맡겨준 일감, 곧 내가 구체적으로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가 탁월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라고 말한 이는 그였는데, 그의 사고가 생겼다. 그의 명령은 그만큼 더 강력해졌다. 꼭 자동차 사고라고 말 할 것은 아닐지라도. 그는 ‘뭔가’ 생길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나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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