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012

 

 

 

 

 

 

 

 

 

 

 

 

  말씀과 삶의 뜨락

 

몰트만 박사가 본 한국교회

 

  말씀과 세상(57)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희망의 신학’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최근 한국에 초청 받아 와서 모 신학대학에서 강연한 바 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충격적입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돈과 명예, 소유에 대한 탐욕과 생존경쟁을 벌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분열되고 교회공동체가 분쟁에 휩싸이는 것도 자기사랑, 자기자랑, 자기중심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유례없는 성장으로 알고 있는 것을 그는 돈과 명예와 소유에 대한 탐욕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결실로 여기는 것을 그는 자기중심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만저만한 역설이 아닙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에 사도 바울의 기도가 있습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 3:14-21). 바울이 본 세계는 분열과 혼돈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분열과 혼돈 가운데 있는 세계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교회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이 깊고 높고 넓게 충만하기를 바라서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몰트만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충만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복음은 ‘하나 됨’의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 됨은 비록 색깔이 다를 지라도 서로 ‘껴안으면서’도 그가 자유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는 어떻습니까? 같은 색깔로 묶이는 것을 하나 됨으로 여깁니다. 다른 색깔에 대해 적대시하는 것을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여깁니다. 어딜 가나 집단의 결속을 다짐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그들이 섬겨야할 공동체는 계속 분열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교회가 탐욕의 열정으로 펄펄 끓습니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네 국가관이 무엇이냐?’고 다그칩니다. 자신의 이념적 색깔을 국가관으로 여기는 무지와 오만이 독사의 눈처럼 번뜩입니다.

마침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한국에 알려진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도 최근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도 역시 한국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시장경제’가 사회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는 ‘시장사회’에 대한 역기능을 표현한 것인데, ‘시장경제’가 경제활동을 조정할 수 있는 도구라면, ‘시장사회’는 거의 모든 것이 거래대상이 되는 사회, 곧 돈과 시장의 가치가 삶의 모든 부문과 방식을 규정짓는 사회입니다. 돈이면 못할 게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지요. 최근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패배감도 짙어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시장사회’의 위험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장경제가 마침내 공교육과 국가에 대한 의무는 물론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까지 물질화시키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봅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롬 8:6). 마음이 육의 생각에 의해 추동되면 ‘육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영에 의해 추동되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마음’ 역시 ‘몸’을 입습니다. 마음이 물질화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질은 질량의 법칙에 따라 바닥으로 내려앉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더 잘 살고자 하는 소유욕은 안정에 대한 욕구임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욕구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물질화는 죽음인 것입니다. 몰트만 박사가 한국교회를 향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으로 본 연유와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시장사회에 편승해서 물질의 성화가 아닌 신앙의 물질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물질화 된 신앙이 지배하는 교회는 오직 승자만을 득세케 하고, 생명이 아닌 죽음의 악취로 진동하는 세상을 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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