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2020

 

 

 

 

 

 

 

 

 

 

 

 

  성서연대 - 수필

 

목회컬럼 11 - 진급하는 날, 진급에 목마른 이들

 

 

 

 

 

 

 

 

 

 





이 준 우


목사
새샘감리교회
ch8131@hanmail.nete






 


찬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드는 12월 어느 날, 교회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중년 부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퍼졌다가 사그라지고, 퍼졌다 가라앉는 말 부스러기는 목사, 금반지, 양복 같은 파편 음을 흩뿌렸다. 영문을 모르는 나그네에게는 암호같은 단어들이지만 말 파편의 근원인 부부를 아는 이들은 그 뜻을 선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말리는 사람도 말을 섞는 사람도 없다.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갈 길을 갈 뿐이다.

혹시 1년 중 마귀가 제일 심하게 역사하는 때가 언제인지 아시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주변의 목사들은 이구동성 異口同聲으로 답을 말한다. 연말이라고. 그렇다고 동지 팥죽과 연결해 귀신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정말 모르시는 말씀이다. 연말이 되면 교파와 상관없이 대개 임직자(감리교회의 경우 임원)를 선출한다. 집사, 권사, 장로 등등.

초대 교회 역사서라고 불러도 좋은 사도행전은 교회 최초의 임원 선출에 대해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오순절 이후 급격하게 부흥한 교회에 위기가 왔다. 매일의 구제 救濟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소외되고 있다고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잘못하면 아직 어린 교회가 꽃도 피기 전에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열두 사도는 성령충만한 사람들답게 이 문제를 수습했다. 먼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사도들이 해야 할 기도와 말씀 사역을 제쳐놓고 접대(또는 재정출납)을 일삼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을 대신하여 ‘기도와 말씀 사역’ 외의 일을 맡아 할 신실한 일군들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안수하여 세웠다. 그런데 일곱 사람의 이름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헬라파 유대인들로 보여진다. 짐작컨대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헬라파 유대인들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 세워진 일곱 사람이 교회 최초의 임직자(명칭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들이다.

이러한 누가의 진술로 볼 때 ‘초대 교회의 임직자’(흔히 집사라고 한다)들은 오직 섬기는 일을 위해 선택된 자들이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복잡다기 複雜多岐해지다 보니 교회의 직분도 분화되었지만, 본질에서 교회의 직분은 호칭이나 맡은 일에 상관없이 섬기는 직분임은 명약관화 明若觀火하여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교회의 직분은 위계질서 位階秩序가 있는 계급처럼, 그리고 연륜이 되면 당연히 이름 뒤에 붙어야 하는 계급장처럼 여기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니 임직자를 세우는 일은 목회자에게 최고 난제라고 할 수밖에. 그리고 그 일을 연말에 결정해야 하니.

어떤 분은 그러한 원인이 유교문화와 관계가 있다고도 하고, 오랜 신분제 사회가 남긴 암 暗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교회에는 장로직이 있다. 그러나 선교 초기는 물론 몇 년 전까지도 장로직이 없는 교파들이 있었다. 감리교회가 그렇고, 나사렛교회나 침례교회가 그렇다. 왜 오랜 전통도 아랑곳없이 장로를 세우게 된 것일까. 오래전 그와 관련해 읽은 글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각 교파가 모이는 평신도 모임에 나가면 장로교회 대표들은 ‘장로’라고 부르는데, 다른 교파 대표들은 ‘집사’라고 불리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서로 격도 맞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어 결국은 모든 교파의 ‘장로교회’화 化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학이고 전통이고 상관없이 계급으로 이해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긴 장로도 같은 장로가 아니라 ‘법에도 없는’(감리회의 경우) 선임 先任 혹은 수석 首席장로라는 칭호가 당연시되고 있으니,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직분문제가 직접 혹은 배경인 경우가 적지 않다. 계급이라는 생각이 강하니, 세월이 흘러도 ‘진급’을 못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고 가시가 되거나 떠나갈 수밖에. 그리고 진급에 진급을 거듭하고 나면 군림하게 되고 심하면 목회자의 감독자나 인사권자(?)가 되는 지경에 가지 이르고. 누군가는 그런 심리를 꿰뚫어 보고 돈과 충성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연말이면 마귀가 역사할까 두려운 나같은 사람은 ‘손 損없는 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목사 같지 않은 생각을 하고! 깜박했네요, 글머리의 그 부부 이야기. 진급하려고 목사에게 평소 금반지에, 양복에 공을 들였는데 진급을 못해 눈치없는 목사에게 돌려달라는 시위였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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