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2020

 

 

 

 

 

 

 

 

 

 

 

 

  말씀과 삶의 뜨락

 

가장 큰 죄

 

  말씀과세상(146)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야스차 뭉크(하버드 대학교, 정치학)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한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아주 행복한 닭이 있었다. 농부는 매일 닭에게 모이를 주러 왔다. 닭은 매일 조금씩 통통해지고, 더 만족스러워하며 자랐다. 농장에 있는 다른 동물들은 닭에게 ‘넌 곧 죽을 걸, 농부는 너를 그저 살찌우려고 하는 것 뿐’이라고 경고했다. 닭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태어난 이래 한결같이, 농부는 몇 마디 상냥한 말과 함께 자신을 먹여 살려왔는데, 갑자기 왜 상황이 바뀌겠는가? 그러나 어느 날, 상황은 바뀌고 말았다. 태어난 뒤 정성들여 모이를 주던 닭의 목을 농부는 확 비틀어버렸다.”

러셀은 우리의 섣부른 미래 예측에 대한 경고를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뭉크는 이 이야기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안정적일 것으로 믿고 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증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모범국으로 여겨왔던 구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닭 이야기를 성경이 말하는 죄악이 인간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예증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인간의 죄에 대해서 갈파한 말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말이 있습니다.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다”(롬 7:11)는 말입니다. 나를 근원으로부터 망가뜨리는 죄가 “(하나님께서 힘써 지키라고 주신) 그 계명을 통해서” 나를 기만하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다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역설도 없지 싶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롬 7:10)라고 탄식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이 말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만일 죄가 죄의 이름으로 혹은 추한 모습으로 나를 유혹한다면, 나는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선을 도구로 삼아 악을 행하고, 정의를 도구 삼아 불의를 행하고, 정결을 도구로 삼아 불결을 행고, 아름다움을 도구로 삼아 추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죄악이 내 안의 욕망, 탐욕, 자만심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탄식하신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가슴을 쳐도 애곡하지 않는 세상 풍조의 중심에는 그런 죄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착 당시 미디안의 바알 브올 사제들이 이스라엘 병사들을 파멸시킬 때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을 바알 축제에 초대해서 미디안 여인들을 품도록 유혹한 것인데(민 31장), 군사적으로 대항하기 어려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미인계를 쓴 것입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바알의 농탕한 축제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끔찍한 괴질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것입니다. 이때 괴질로 죽은 자가 이만사천이나 됩니다(민 25:9). 비록 적이었음에도,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바알 브올의 초대는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달콤한 초대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인간은 오랜 관습과 의식에 머무르는 관성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변화된 시대를 말하면서 사는 모습은 전혀 아닙니다. 손에 든 깃발로는 정의를 닦달한 이들이 실제 드러난 자신의 삶은 정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나는 의롭다는 자기의식은 그만큼 기만적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 겉으로는 백성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자기 안위만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저술가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가장 큰 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줍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악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나타나면 누구나 혐오하는 악, 그리스도인 말고는 자신에게도 그런 악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악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 또는 자만입니다.” 악마는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고, 그리고 이 교만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교만은 본질적-본성상 원래 경쟁적”이라고 루이스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각자 스스로 돌아볼 일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있으면 나는 지금 하나님과 전적으로 맞서는 교만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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