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2020

 

 

 

 

 

 

 

 

 

 

 

 

  편지로 띄우는 말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

 

 

 

 

 

 

 

 

 

 





이 은 재


목사
무지개공동체교회 담임
kszukero@hanmail.net






 


신명기 사가는 모세의 죽음을 기록하며 이런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 주님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돌아보면 이런 평가가 결코 쉽게 얻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기구한 운명을 따라 40년을 바로의 궁전에서, 그리고 40년을 미디야 광야에서 양치기로, 나머지 40년은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가 호렙산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가 여든 살이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는 다 스러지고 양치기로 사십 년을 보낸 노인에게 무엇이 남아있었을까요?

이 장면에서 저는 항상 하나님의 부르심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광야에서 목동생활 40년, 상상할 수 있습니까? 희망이나 절망, 이런 단어는 오히려 사치스러울 것입니다. 황량한 광야처럼 그의 얼굴도 마음도 생각도 그랬을 것이라고 느낄 뿐입니다. 모두에게서 잊혀버린 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 그리고 매일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그의 모든 것을 변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냥 광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이 생각하는 때와 참 다릅니다. 모세에게 아무런 희망도 여력도 남아있지 않은 그때, 불쑥 하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절망은 인간의 언어이지 하나님의 언어는 아닙니다. 때가 차자 드디어 모세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정한 삶이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께 붙들린 삶입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입니다.

부르심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니 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삶의 짐이 너무 크고 엄청나서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깨달은 것, 세우시는 분도 이루시는 분도 오직 주님뿐, 그래서 그분만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무능함과 혼연일체가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맡긴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제 후손들에게서 그런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 영적인 사람, 삶의 답을 찾으려고 묻고 또 물었던 사람, 생명의 신성함과 본질을 찾으려고 하나님만을 바란 사람, 그래서 세속적인 일에는 다소 무능하고 무책임 했던 사람, 대신 그것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 그리고 그런 믿음의 유산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코로나19 제2차 유행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1차 때보다 더 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실제 감염되는 숫자를 보아도 전 세계적으로 상황은 나빠지고 있습니다. 미국-중국의 무역전쟁과 미국의 대선, 무슬림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등 전 세계적으로 갈등구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폭력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되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이런 암울한 상황은 모세가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때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일이 아니고 깨어 주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불꽃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고요하게 나만의 광야로 나가 보십시오. 마치 세상은 사라지고 나는 잊혀 진 듯 그렇게 고요하게 머물러 보십시오.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로 옮겨 앉아 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들을 귀가 필요합니다. 탄식하는 피조물들의 고통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전적인 무능함과 고요함으로 광야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다가올 것입니다.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움은 없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평화와 기쁨이 선물처럼 주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서로 불신하고 적대시하지만, 주님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은 충만한 사랑으로 세상을 향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모두 다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사랑을 갈구합니다.
꺾인 꽃조차도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압니다. 의식이 없는 생명도 사랑에 반응합니다.”

- 구르지예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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