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06

 

 

 

 

 

 

 

 

 

 

 

 

  강정규 연재동화

 

파리와 모기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단국대 초빙교수.






 


4

“얘야, 늬가 웬일이냐, 응? 애비도 함께 왔느냐?”
할머님이 반색을 하셨습니다.
“아니.”
“그럼 혼자?”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이어서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됐다, 됐어, 어여 들어가자.”
나는 그날 밤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젖을 만지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같이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별 일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어머님.”
아버님은 몇 번이고 별 일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할머님도 몇 번이고 윽박지르지 말고 달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비도 자랄 때 실수가 있었느니라. 어린 것이 동생 잃고 속이 허해서, 쯧쯧······.”
나는 아버님 손에 이끌려 할머님댁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솔나무 아래까지 왔을 때 아버님께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예 와, 종아리 걷고 서거라!”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산싸리를 꺾어 오시더니 내 종아리를 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른 앞에서는 함부로 자식도 나무랄 수 없는 법, 그러나 누워계신 조상님들은 이해하실 게다.”
아버님은 계속해서 종아리를 때리셨습니다. 매가 꺾어지면 새 매를 드셨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으면 다시 세워 때리셨습니다.
“사내녀석이 매사에 당당허지 못허고, 못나게시리 도망이나 치고······.”
“다시 그러지 않을께요, 아버지······.”
“그래, 그럼 됐다. 가자!”
아버님은 부러진 싸리가지를 내던지고 앞장서 걸으셨습니다. 나는 절뚝거리며, 울며 아버님 뒤를 따랐습니다. 정거장에서 막차를 기다려 타고, 석탄을 때는 기차가 욱, 소리를 지르며 서천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날이 한참이나 저문 뒤였습니다.
아버님은 앞장서서 말없이 걸으시고, 나는 절뚝거리며 곧은 신작로를 걸었습니다. 종아리가 쓰렸습니다. 나는 점점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렸습니다. 다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달이 구름 속으로 숨었습니다. 아버님은 이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울며, 절뚝거리며, 걸었습니다.
한참 그렇게 걸어가는데, 눈 앞에 하얀 무엇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
“업혀라.”
아버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내가 아버님 등 뒤로 다가서고, 아버님의 두 팔이 내 엉덩이를 감쌌습니다. 순간 내 몸뚱이가 둥실 떠오르다가 아버님 넓은 등판에 달라붙었습니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버님의 등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습니다. 때없이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모기를 쫓았습니다. 아버님의 손이 번갈아가며 내 양쪽 종아리를 쓸어내렸습니다. 달도 가고 아버님 등에 업힌 나도 밤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유? 정규냐?”
저만치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가의 갈숲에서 이따금 물총새들이 푸드득거리는 한여름 밤이었습니다.

나는 지난 식목일 당진 선영에서 거행된 문중의 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애써 구한 새마을호 승차권은 두 장이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막내아들과 함께 물어물어 그 곳에 도착한 나는 하루종일 아버님을 기다렸습니다. 오시기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기다렸습니다.
길이 막혀 오후 늦게야 도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 저녁때, 내게 아저씨뻘이 된다는 한 분은 할머니뻘이 된다는 그의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큰길까지 승용차를 타고와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내가 운전 배우면 할아버지 생전에 꼭 모셔올게.”
나보다 덩치가 큰 막내가 말했습니다.
“좋았어!”
나는 녀석의 넓은 등짝을 철썩 때렸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늙어서 녀석의 등에 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좀 쓸쓸하게 혼자 웃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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