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주워서 계단 위로 올라가 그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꼭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프리에레에는 심부름하는 아이들이 없고 각자가 자기 일과 쇼핑을 한다는 일반규정에 그가 예외가 된다는 말을 누구에게서도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매력적인’ 미소를 띠고 말하기를 내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자기는 구르지예프 선생을 위하여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자기를 위하여 이런 심부름쯤 해주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다. 나도 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고 내가 구르지예프와 그의 방을 보살피고 있고 또 자신의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시 생각한 다음 구르지예프 선생에게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학교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적어도 내 쪽에서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내가 더 오래 기다리지도 않아도 될 정도로 일이 발전했다. 얼마 안 되었는데 ‘커피 호출신호’가 그의 방에서 왔다.

내가 커피를 가지고 그 방에 갔을 때 예상했던 대로 타이피스트가 그와 함께 앉아 있었다. 내가 커피를 따르고 있을 때 구르지예프 선생이 그의 독특한 ‘매력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너 이 레이디를 아나?” 물었다. 내가 물론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가 말하기를 타이피스트가 자기에게 말했는데 나에게 자기 심부름 하나 해 달랬는데 내가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하였다. 내가 그건 맞다고 하며,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각자가 자기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맞다고 그가 동의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그에게 모든 걸 자세히 일러줄 시간이 없었으니까 이번 경우에는 그가 자기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니까 자기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고 타이피스트가 부탁한 일을 해주면 아주 고맙겠다고 말했다. 나는 난처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돈을 줘 내가 가게에 가서 그 비누를 사다줬다. 내 생각에 내가 어떤 기분이었든지 간에 그에게는 내가 그 심부름을 해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그 일을 끝내려고 결정한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실제로 ‘특별’하였을 것이고, 적어도 구르지예프는 그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비누와 거스름돈을 갖다 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 팁을 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옳았다는 것을 이제 내가 깨달았을 것이고 구르지예프 선생이 행동을 취한 것이 그 점을 명백히 했기를 바란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화가 났다. 나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가까스로 혀를 누르고 참았다. 나는 또한 구르지예프를 봤을 때도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속으로는 계속해서 부글거렸다.

며칠 뒤 주말에 손님이 많이 다녀갔다. 구르지예프는 타이피스트가 일하고 있는 테라스 앞 쪽에 있는 잔디 근처에 놓인 그의 작은 테이블에서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내가 그들 모두에게 커피를 가져다 따르고 났을 때 그는 나에게 가지 말고 있으라고 몸짓으로 지시한 다음 모인 손님들에게 계속해 말했다. 새로 신기한 놀랄 거리를 보여주고 싶어서 지체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가 새로 구한 훌륭한 걸 들면서 하나는 ‘전기냉장고’요, 하나는 ‘터치타이피스트’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모두를 새 냉장고가 설치된 찬방으로 안내하라고 해서 갔는데 구르지예프가 서양의 천재적인 생산품이라면서 ‘나의 도움 없이도’ ‘저 혼자서 절로 얼음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보통 모델인 프레지데르인 것을 보고는 모두 의아해했다. 이렇게 둘러보기를 마치고 모두가 테라스 쪽으로 갔다. 두 번째 놀랄 거리는 역시 ‘나의 도움 없이 자판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책을 칠 수 있다고 했다. 타이피스트는 일어나서 그에게 인사하였다. 구르지예프는 그를 소개도 안 하고 그냥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의 명령에 따라 타이프를 쳤는데 ‘자판을 보지도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창공을 바라보면서 계속했다.

구르지예프는 손님들 가운데 서서 무한한 찬사와 함께 바라보면서 그 또한 서양세계의 ‘천재’적인 산물이라고 말하였다. 나도 실제로 타자기의 터치시스템을 사용하는 그의 능력에 매료되었고 내 자신의 관심과 찬사도 꾸밈이 없었다. 구르지예프는 뜬금없이 내 쪽을 보면서 마치 우리가 뭔가 대단한 조크를 공유한다는 듯이 마음껏 활짝 웃으면서 커피 잔을 모두 거두라고 했다.

얼마 안가서 그날 저녁에 그의 방에서 그는 다시 한 번 타이피스트 얘기를 꺼냈다. 그는 먼저 ‘전기냉장고’얘기를 하면서 “전기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즉시 웅~소리를 내면서 얼음을 만들기 시작하지” 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음모하듯이 “독일 타이피스트도 그렇지. 나는 플러그가 좋아. ‘내가 타이프를 쳐’ 하고 말하면 그도 역시 소리를 내면서 얼음이 아니라 책을 만들지. 훌륭한 미국의 발명이야.”

그때 나는 그가 거의 좋아졌다. 그때부터는 그의 심부름을 기꺼이 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말을 안 할 수 없었고 구르지예프는 만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끄덕였다. “네가 타이프레이디를 도우면 나를 돕는 거야. 기름을 치면 기계가 잘 돌아가는 것 같이, 이거 훌륭한 일이지.”(끝)

‘소년과 구르지예프’ 연재를 마치며 ‘소년과 구르지예프’를 제목으로 번역한 프릿츠 피터스 Fritz Peters의 『Boyhood with Gurdjieff』를 ‘넘버 ⅩⅩ’에서 일단락 짓습니다. 그동안 33회에 걸쳐서 햇순에 연재했는데 고 김영운 목사께서 틈틈이 번역하셨던 책입니다. 특히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여름인 2013년 8월, “이번 여름휴가는 ‘소년과 구르지예프’와 함께 했다”고 하시며 A4 이면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이 쓴 번역원고를 주셨습니다. 마침 그때 원고를 많이 주셔서 지금까지 햇순에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원고가 끝나 아쉽지만 지금은 연재를 중도에서 일단락 짓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허락된다면 누군가 나머지 부분을 이어서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년과 구르지예프’를 소개하기 전, 고 김영운 목사께서 영성에 도움을 주는 책으로 ‘영혼의 돌봄’에 이어 ‘영혼의 종교’를 번역하셨습니다. 그때 오랫동안 햇순에 연재하면서 독자들과 함께 영혼과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내면의 고요함과 잔잔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햇순편집위원들께서 ‘영성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독후감 형식으로 다양하게 소개하며 햇순 독자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햇순 독자여러분들과 함께 영혼을 돌보는 복을 누리게 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