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015

 

 

 

 

 

 

 

 

 

 

 

 

  편지로 띄우는 말씀

 

함께 가자

 

 

 

 

 

 

 

 

 

 





하 태 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연초에, 인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어린 아이를 폭행하는 장면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습니다. ‘어찌 저럴 수가!’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서둘러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공적인 성찰은 보이지 않고, 주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제 됐구나!’ 라고 안심할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국가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의 심성이 피폐해진 이유를 살피고 그에 부합하는 정책을 내놓는 게 순서일 것입니다.

최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반응이 수상쩍습니다. 전시의 생존전략을 미덕으로 삼아 어떻게든 살아남는 걸 경제도약의 에너지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전시의 생존전략이라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 삶입니다. 양심이나 염치, 생명존중, 타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미덕은 시궁창에 처넣고 눈앞의 생존에만 매달려야 합니다.

흥남부두에서 피난길 수송선을 먼저 타기 위해 아우성친 무리, 남쪽으로 내려가는 피난열차 지붕에 매달려 뒤이어 기어오르는 이들을 밀쳐내고서야 겨우 내 목숨 부지할 수 있었던 삶입니다. 그런데 그 참혹했던 전시의 생존전략을 그리워하고 그때와 같은 열정으로 살기를 바라다니. 오로지 승자가 되는 것만을 성공으로 여기는 멘탈리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후대에만큼은 다시는 그런 험한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이라야 맞습니다. 대한민국을 새로 건설한다면 그런 나라여야 합니다.

구약성서 신명기에,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되묻는 장면이 있습니다(신 10:12). 하나님의 나를 향한 물음은 내가 인간이 되느냐 아니면 단지 인간이라는 ‘종 species’에 머무느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아는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찰나를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단지 내 목숨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이야말로 전시의 생존전략으로 사는 인간입니다. 그렇게 사는 인간은 양심이라는 기능이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하지만 전시의 인간이라 해서 모두가 짐승처럼 사는 건 아닙니다. 전시와 같은 절박한 때야말로 인간의 고결함이 드러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감동했다는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된 흥남철수작전이야말로 인간성의 고귀함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중공군의 역습으로 서둘러 철수할 수밖에 없는 위급한 때에, 10만 여명이 넘는 피난민까지 몰려들어 흥남부두는 추위와 굶주림 혼란과 공포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철수작전을 지휘한 미10군단 사령관 알몬드 소장은 군단 병력 철수가 우선임에도 군함을 이용한 민간인 철수를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전시임에도, 피난민을 더 태우기 위해 200t이 넘는 탄약과 500여개의 포탄, 유류 200드럼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지에 내몰린 98,000명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시에, 나라를 위해 군인과 군수물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수작전을 지휘한 미군 사령관은 달리 생각했습니다. 살려달라는 이들을 버려두지 않고 ‘함께 가자’고 저들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나라가 있어야 백성도 있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 우리가 숱하게 들은 말입니다. 하지만 ‘나라’가 먼저라며 약한 이들의 손을 뿌리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신명기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시는 분, 나그네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 말하는 것은 그분 앞에 선 인간됨에 대한 요구입니다. 나그네와 같은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별됨’ 즉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그것을 ‘마음의 할례’로 표시합니다. ‘마음의 할례’야말로 인간이 동물의 껍질을 벗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의 인간성으로 살아남는 것은 미덕일 수 없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인간성을 포기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몰아붙이는 나라, 그리고 그들을 고통 속에 ‘내버려두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런 나라는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습니다. ‘함께 가자’고 손 내미는 나라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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