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5/2012

 

 

 

 

 

 

 

 

 

 

 

 

  성서 난해구 해설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욥기 11 : 12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번역자문위원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번역자문위원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yjmin@bskorea.or.kr






 


민영진 교수님께,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성서번역에 종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미치게 궁금한 것 하나 급히 여쭙습니다. 바쁘다는 핑계 대지 마시고, 또 배배 꼬지 마시고, 곧바로 대답 좀 해주시고, 시원하게 말씀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글쎄, 보세요! 어떻게 같은 히브리어 본문이 정반대로 번역될 수 있단 말입니까? 욥기 11장 12절입니다. [개역]을 보니까, “허망 虛妄한 사람은 지각 知覺이 없나니 그 출생 出生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 번역이 명쾌하게 뜻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저로서는 지각없는 인간은 태어나기를 들나귀 새끼처럼 그렇게 바보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공동번역]이 나왔을 때 같은 구절을 보니까, “거짓된 사람도 제 정신이 들 때가 오는 법, 들나귀도 길이 들지 않는가!” 라고 되어 있어서, 역시 번역이 썩 명쾌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모자란 인간도 제 정신이 들 때가 오는 것은 마치 들나귀도 길이 드는 것을 빗대어, 얼간이 같은 인간도 교육받기에 따라서는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새번역]으로 같은 본문을 읽다가 돌아버릴 것 같은 현기증을 느낍니다. “미련한 사람이 똑똑해지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리라”니요? 미련한 사람은 절대로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같은 히브리어 본문 성경을 번역할 터인데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뜻이 생기는 것인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미치게 님께,

귀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같은 히브리어 본문 성경을 번역할 터인데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뜻이 생기는 것인지”라는 말씀이 우리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구실을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어리석은 사람을 두고 공동번역이 이해한 것과 [새번역]이 이해한 것이 서로 반대이군요. 공동번역은,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는 점을 말함에 있어서 낙관적인데 반해, [새번역]은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를 가지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절망의 국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과장이 심하여 짐승이 사람을 낳는 일이 생기면 아마도 어리석은 이가 지혜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한 번 볼까요? “골빈 놈”(‘나부브’)이 “정신 차리는 것”(‘일라베브’)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문장 전체를 보면, 어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만일 그런 일이 난다면, 이런 일도 일어난다.”는 구조입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말할 때 사용하는 구문입니다. 그러나 주석가들에 따라서는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본문에서, 좀 더 문자대로 번역하여 들나귀가 낳는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나기”(‘이발레드’)를 “길들여지기”(‘일라메드’)로 고쳐 읽어서 “골빈 놈도 슬기를 가질 수 있다. 들나귀 새끼도 길들여지지 않더냐”라는 뜻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귀하께서 이미 문제를 제기하셨지요? “같은 히브리어 본문 성경을 번역할 터인데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뜻이 생기는 것인지”라고. 같은 본문이 달리 번역될 때는 표현이나 다를까 뜻은 같습니다. 이번 경우는 같은 본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원문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원문의 “태어나기”(‘이발레드’)를 “길들여지기”(‘일라메드’)로 고쳐 읽어서 서로 다른 내용을 반영한 경우입니다.

“허망 虛妄한 사람은 지각 知覺이 없나니 그 출생 出生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라고 번역된 [개역]도 근본적으로는 [새번역]과 같이 지각이 없는 허망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지각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절망적입니다. 출생 자체가 무지한 짐승으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니까요. (짐승들아, 너희를 모르는 사람이 더 바보일 수도 있어서 이런 말 하는 것이 몹시 미안하다!)

그런데, 영어 독어 불어 등 여러 외국어 번역 성서들을 비교해 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절대적 다수의 번역은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것에 관해서는 절망적인 이해를 반영합니다. 제가 다수결로 소수 의견을 묵살하는 것 같다면 죄송합니다.

귀하께서 문제 있다고 지적하신 욥기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말은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이 어리석다고 힐난하면서 욥에게 절망할 때 한 말입니다. “미련한 사람이 똑똑해지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려라.”라고 번역한 [새번역]도 각주에다는 “또는 '미련한 사람도 똑똑해질 때가 있고, 들나귀 새끼도 사람처럼 길이 들 때가 있다'”고 번역할 수 있다고 하였네요. 모호한 한 본문이 독자를 깊은 사색으로 이끌고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선택하게 하네요. 질문 고맙습니다.

민영진 드림

 

 

 

 

 

 

 

 

 




152-815 서울 구로구 개봉3동 341-21 2층   Tel 02)312-6803, Fax 02)374-7277
  cbs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