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을 멈춘 자리에서 글을 쓰려하니, ‘내가 이 글을 쓸 만한 자격이 있는가?’하는 물음이 올라온다. 친한 선배언니의 부탁에 거절 못하고, 쉽게 하겠다고 한 결정에 후회막급이다. 하아, 이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신학적이지 못하며,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결정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부족하지만, 나로선 최선인 글을 쓰고자 한다.

1.

목회를 접고, 시골로 내려와서 농사를 지으며 산지, 올해로 10년째. 나는 오늘도 호미를 들고 밭에서 산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 때는 아니다. 농사를 준비하는 때이다. 올라오는 풀들을 매고, 5월에 밭으로 나갈 애들 - 호박, 오이, 수세미-을 포토에 넣고 비닐집 안에서 키운다. 밤 기온이 떨어지니 비닐집 안에서도 또 비닐을 덮고, 두터운 부직포로 덮어놓는다. 비 소식에 마음이 놓였는데, 아주 조금씩 비 소식에 마음이 놓였는데, 아주 조금씩 내려주시는 비에 갈증이 난다. 많이 좀 와주시지, 하는 바람을 하늘에 올린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할머니들 한글 공부하는 날. 밖은 해가 있어서 따습지만, 교실 안은 춥다. 미리 가서 난로를 피워놓고, 물도 끓여놓고 어르신들을 기다린다. 유모차를 밀고 걸어오시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오시는 여덟 분의 할머니들이 내겐 선생님이시다. 두 시간 동안 한글과 산수를 공부하면서 나는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들어와 저녁을 준비한다. 흙이 묻어있는 옷을 갈아입고 밥을 올려놓고, 반찬을 하고 저녁을 먹고나니, 얼굴에 열이 올라 붉으스레해진다. 많은 바람을 맞으며 일을 한 때문이다. 밥도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온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간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오늘 만난 모든 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만난 것들, 만난 사람들의 눈이 되어 오늘의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살았는지…….

2.

지난 3월 29일, 한글반 할머니들 가운데, 세분을 모시고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다. 할머니들이 그 먼 길을 다녀올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선생님이라고 내 도시락까지 싸주시며 네 시간 반, 거의 다섯 시간을 걸려서 다녀왔다. 추모관에 들어가서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향 피우고, 가만히 서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신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우는 것 밖에는. 방파제로 가니, 유가족인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 한 분이 울고 계신다. 할머니가 가서 안아주시니 엄마같다시며 손을 잡고 그 긴 방파제를 걸었다. 그렇게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나갔는데, 오늘 공부하러 오시면서 그 날 받은 서명용지 한 장을 꽉 채워서 가지고 오셨다. 보는 사람들한테 받았다하시며 주시는데, 어르신들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이제 곧,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아직도 아홉명이나 차가운 물속에 그대로 있는데….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원인도 모르고, 배도 꺼내려 하지 않고. 오늘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머리를 삭발하며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눈물이 난다. 가슴이 턱 하고 막히고…. 아, 아직도 꽁꽁 언 겨울이다. 우리나라는. 이 사회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은, 봄이다. 나무들은 물을 머금고, 연초록의 이파리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단단해진 땅을 뚫고 올라오는 여린 새순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이렇게 여린 순이,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올 수 있을까? 그건 생명이다. 그건 사랑이다. 살아있기에. 살아있는 숨이 단단해진 것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온 새순에게서 우리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운다. 깊은 아픔에 공명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 사랑만이 죽음의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그렇게 봄은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