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계절, 5월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5월은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할 만큼 분주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달력에 나타난 대로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 날(5일), 어버이 날(8일), 입양의 날(11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8일), 부부의 날(21일) 등 다양한 기념일이 많은 것이 그 한 이유로 여겨집니다. “근로자도 가족처럼”이란 구호와 “스승을 부모처럼”여긴다는 지나간 관행까지 포함시켜 본다면 한국의 5월은 명실상부 가족의 달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서구 사회와 달리 가족주의가 아직도 매우 깊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외형적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 깊숙한 곳에는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의 교묘한 절충이 가족 갈등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내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회적 폐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기적 가족주의를 배척한다는 명분으로 가족의 의미를 평가 절하한다면, 그것 또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개개인들이 고립 분산되어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기 쉬운 오늘의 상황에서 가족의 결속과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전개되는 전통 가족의 해체와 대안 가족의 증가를 염두에 두고서 가족과 관련한 기독교인들의 과제를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 결혼, 이혼, 재혼, 무자녀, 비혈연, 독신, 동거, 한부모, 조손, 다문화 가구 등 다양한 생활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개방성과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 생활공동체들의 삶의 현장과 유리되지 않아야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은폐하거나 도외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유대를 나누는 이웃관계로 혈연 중심의 배타성과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사는 정신과 지혜를 가르칩니다.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우상(매튜 폭스, 1999)을 만들고 가족을 사회와 분리시킴으로써 더 큰 공동체와의 결합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극단의 경우 반사회적인 의식과 가치관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가족 중심의 지나친 ‘우리 의식’은 우리 밖의 사람과 집단에 대한 경계와 배타적 태도를 형성함으로써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인 가족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가족 내 성차별과 연령차별을 비판적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의 성 역할 분담은 한편으로는 아내, 딸, 며느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 아들, 남성들의 과도한 부담을 강요하는데, 이를 더 이상 미덕으로 간주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족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자리라고 한다면, 성과 연령, 권력과 능력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가족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족은 사랑과 화목이 넘치는 곳이지만 동시에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고통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약자를 강하게 하시듯이 가족에서 일방적인 지배와 희생으로 아파하는 약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상생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3) 가족과 관련된 성서의 구절들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역사적 가부장주의를 절대화하는 신학적 가르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적 가부장주의를 비역사적인 절대 진리로 탈바꿈시키는 신학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관계와 이야기로 가족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딱딱하게 굳어진 가부장제 질서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옹호하고, 이 질서를 흔들거나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은 악으로 규정하고 죄로 단정한다면, 성차별은 정당화되고 부계 혈통의 직계가족만이 정상가족 the family이고 그 이외의 가족형태는 거부될 것입니다.

이렇듯 가족의 화목과 조화를 고려하고 가족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일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의가 없으면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