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012

 

 

 

 

 

 

 

 

 

 

 

 

  말씀과 삶의 뜨락

 

성만찬적인 리더십

 

  말씀과 세상(53)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새해 벽두. 듣기 민망한 정치권 비리가 연일 뉴스거리가 되는 가운데서도 밝은 내일을 기대해볼만한 소식이 있습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 대표 박근혜,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대표 한명숙, 제2야당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이정희 심상정 등 모두 여성정치인이 맡게 됐다는 소식입니다. 언론마다 한국 정치사 초유의 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떤 것도 과장은 아닐 성싶습니다. 여기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박영선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들 가운데 박영선, 심상정, 이정희는 앞선 권력의 후광 없이 자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기대가 모아집니다. 살아온 길도 다르고, 이념적 지향도 다르지만, 세 사람 모두 재벌·검찰·수구언론에 굴하지 않고 맞선 담력, 시대에 부응하는 정책, 치밀한 논리, 일관성, 성실성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2012년 한국은 ‘진짜 여성 정치인’을 원한다”는 칼럼니스트 김민아의 글은 그래서 공감이 갑니다. “이들 세 사람이라면 남성들이 흔히 여성 정치인의 강점으로 언급하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의 차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며, 불의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그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 정치… ‘생물학적 여성’이 권력을 잡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기대할 때다. 누구의 딸이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전 인생을 걸고 정치하는 여성들, 희소성 대신 실력과 논리와 집념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권력을 잡기 바란다.”(2012. 01. 16., 경향)

왕조시대에, 그것도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여선지자 훌다가 있습니다. 훌다는 유다왕국 요시아 왕(기원전 640-609) 때 궁중예복을 담당하던 관리 살룸의 아내입니다(대하 34:22). 요시아 왕은 재위 기간 중에 솔로몬이 지은 이후 쇠락한 성전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일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됩니다. 왕은 책의 내용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왕하 22:13) 특명대사를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냅니다. 이때 낡은 책을 해석한 훌다는 나라가 망한다는 무서운 신탁을 전합니다. 바빌론 포로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유대 문헌에 나타난 훌다는 율법학자로서 장로들에게 토라를 가르친 사람이요, 고대의 기록물을 판독하는 학자입니다. 요시아의 종교개혁은 바로 성전에서 발견된 책을 훌다가 판독하고, ‘거룩한 책’으로 명명함으로서 시작된 것입니다. 왕이 입는 옷이나 만드는 시종의 아내가 율법에 능한 학자요, 장로들을 가르치는 교수요, 타협하거나 굴절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였던 것입니다. 요시아의 종교개혁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훌다는 남성들만이 역사를 주도하는 왕조 시대에 여성으로서 역사 변혁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식견과 시대에 대한 안목,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정절과 섬세한 리더십을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곳곳에 여성에 대한 장벽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나아지려면 여성들 스스로 능력을 갖추라고 하기 전에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제공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성화된’ 여성들이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조건만으로 여성의 리더십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 환영받을 게 못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시대의 리더십으로 성만찬적인 리더십을 주목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가부장적인 리더십은 못 난 이들은 멀리하고 승자만을 거느리기를 좋아합니다. 이권 챙기는 데는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달랐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변호 능력이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들, 희망 없는 이들을 가까이 하며 품어 안으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삶을 집약한 성만찬(고전 11:23-26)은 우리 시대 여성들에게 바라는 리더십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권력과 이권에 중독된 리더십이 아닌 어린 핏덩이처럼 가냘픈 이들, 낯선 땅에 몸 붙여 사는 이주민들, 소외된 이들, 소박한 꿈 지니고 사는 이들을 위해 온 몸 굽힌 삶으로 섬기는 ‘성만찬적인 리더십’이야말로 혹한의 시류에 얼어붙은 삶을 녹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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