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3 / 2018

 

 

 

 

 

 

 

 

 

 

 

 

영혼의 언어와 논리

 

구르지예프

 

 

 

 

 

 

  『“참 나”일 때만 삶은 참되다 Ⅲ』 2.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전체와 모두" 세 개의 시리즈 10권의 책
첫 번째 시리즈: “베엘제부브의 손자” 혹은 “인생에 대한 객관적인 공정한 비평”의 3권
두 번째 시리즈: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3권
세 번째 시리즈: “참 나 일 때만 삶은 참되다”의 4권


Life is real only then, when "I am“
(구르지에프, "전체와 모두" 중 세 번째 시리즈)

내적 부요의 획득을 위한 이 원리에 감사를 표하면서, 나는 이제 전혀 편견 없이 그리고 공정하게 다음 질문을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내가 개발한 이 원리가 일상적 삶의 다른 모든 영역에도 그렇게 생생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내 속에 잠재된 견해를 따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오직 일반적인 물질적 위기에 대해 감사하는 것에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감사를 그런 일반적인 인간 불운에 대해서만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이전 견해를 유지하려 한다.2) 이제 나는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내적 부요를 위한 이 불확실한 요소에 대해 반신(half-mockingly, 半神)적인 감사(물질적 실패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함을 감사한다는 의미: 역자)를 표하면서, 내 이기적 생각들 때문에 크게 실망했던 내 가까이에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 중에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매우 ‘달콤한’ 인생을 살지 못한, 실제로 혈연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나와 가까웠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 저작 세 번째 시리즈의 이 장 障을 포함하여 내 이기적 목표의 순차적 성취 거의 직전에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나와 가까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내면세계에 형성되어 있는 오직 두 가지 “잠재적 요인들”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나의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내 신념의 군주가 되었던 요소로 다음과 같이 자리 잡았다: “사람은 오직 온전한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좋은 이타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둘째는 내 세 가지 목표의 7년 임무를 실행한 지 2년 후에 내 안에 형성되었다. 출판을 목적으로 집중적으로 저작 작업을 하는 동안, 불행하게도 법적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나의 이기적 생각(물질적 실패는 영적인 부요가 된다는 생각: 역자)의 추구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을 주목하면서, 한번은 내 스스로 아버지로부터 배운 마음 조절 기술을 사용했는데, 내 현존에 자기 암시 결정화를 통한 이 심리적 요소를 적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상을 하였다: 만일 내가 스스로 부과한 목표들을 달성하고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명확한 프로그램대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내 모든 각성상태의 1/3은 내 몸의 즐거움에 헌신하도록 할 것이다: 두 번째 1/3은 오로지 그때 혈연이나 영적으로 내 가까이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할 것이다: 세 번째 1/3은 과학을 위해서, 곧 온 인류를 위해서 헌신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서문에서 모든 것들이 명료화 된 후에, 나는 매우 신중하게 나를 아는 혹은 모르는 모든 독자들에게, 또한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적지 않게 사랑하는 “적들에게” 내 마지막 책의 이 텍스트의 본질에 대해, 특별히 결론 장 章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노력해 줄 것을 조언한다.

내 마지막 책의 결론 장 章을 나는 “인간의 내적 그리고 외적 세계”라고 제목을 달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질문, 사람들을 인도하는 낯선 질문, 그럼에도 모든 질문들 중에서 가장 걸출한 질문,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거의 모두가 따르고 있는 총체적 무지(잠든 상태: 역자)로부터 설명할 수 있는 질문을 하였다. 매우 신중하게 나는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기를 충고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일상적 현존에서 잠재적으로 획득하는 행동, 즉 쓸데없는 걱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삶에 도덕적 고통을 발생시키는 “요소-모형/ factor-pacifier”을 대신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가 사용한 “적”이라는 단어는 우연하게 쓴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사용했다.

첫째, 내 참된 자기 real self를 위한 매우 친한 친구들, 나의 내적 세계를 위해 출현하고, 낯설게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나의 “철저한 적들” 사이에서 특별한 누군가가 되어준, 현재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 때문이다;

둘째, 이 책의 결론을 위한 아주 좋은 사례로써 이상적으로 나한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내적 세계를 특별히 힘들게 하는 그런 “적들”의 모임을 재수집하면서, 이미 여기 내 마지막 책의 서론 장에서, 그들이 즐겁거나 혹은 불쾌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전승들과 고대로부터 신비주의 전승 lego monisms을 통해 우리 시대까지 전해진 대중적 지혜를 인용하여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건들고 바꾸고 싶다. 내가 그들의 즐거움이나 불쾌함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지금 따라가고 있는 현재의 삶의 강물을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시간들이 경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여전히,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무자비하여 그들에게도 그렇게 대했던-그런 선택이 그들에게는 너무 빠르거나 혹은 늦어서 그들을 측량할 수 없는 대양에 빠지게 했던- 그때의 삶의 강물을 따라 여전히 살고 있는지, 혹은 법률 준수와 같은 삶의 유혹들이 그들을 밀어부처 빠르든 늦든 심해에 빠지고야 마는, 나아가 진화나 혹은 퇴화를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이 대중적 지혜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은 선을 잊어버리는 돼지도 아니며 또 악을 기억하는 고양이도 아니다.” “의식 conscience이나 혹은 깊은 생각 consideration이 없는 사람에게 첫 거절은 이전에 그에게 수천가지의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떤 종교를 따르든, 비록 누군가가 자신에게 행한 잘못된 일을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향해 어떤 악도 선언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치 있는 사람이다.” “현재로부터 미래의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배울 때만이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당신의 선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행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첫 번째 선물-당신에게 엎드려 절한다. 두 번째 -당신의 손에 키스한다. 세 번째 -아첨한다. 네 번째 -그의 고개를 한번 까딱한다. 다섯 번째 ?매우 친밀하게 군다. 여섯 번째 ?모욕한다. 일곱 번째 ?고소한다.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다음호에 계속).

번역: 이은재 목사
대한에니어그램 영성학회
kszuker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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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르지에프가 ‘무한한 근원’이라고 불렀던 내적 부요의 원리는, 실제의 물질적 삶에서는 때로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질적 삶의 실패를 통해 삶의 다른 영역, 즉 영적인 영역에서는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그러므로 이 실패를 우리는 감사할 것인가 아니면 불행으로 느낄 것인가? 기계적 삶의 당연한 결과인 이 ‘고통’을 기뻐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이런 갈등 때문에 이 내적 부요의 원리는 때론 명확하게, 때론 불확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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