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 님께,

우리말 번역 마태복음 11장 12절 번역이 “악 惡한 번역 飜譯”이 아니냐고 물으신 것이, 아마도 [개역](1938/1961)과 [개정](1998)의 번역을 염두에 두고서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귀하께서 같은 번역을 두고, 대한성서공회가 이런 “오역 誤譯”을 왜 고치지 않느냐고 나무라기도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선, 우리말 성경 번역에 대하여 귀하의 의견을 주신 것에 대하여, 그리고 문제의 번역과 관련된 번역 분야와 주석 분야의 논의를 성경독자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말 번역 성경 독자들 사이에서 이 본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개역]과 [개정]에 반영된 번역에서 보듯이, “하늘나라”가 “침노를 당한다”느니, “침노하는 자가 하늘나라를 빼앗는다”느니 하는 이런 표현이 좀 수상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역]과 [개정]의 번역이 [새번역](1993/2004)의 번역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역]과 [개정]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번역하였고, [새번역]은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라고 번역합니다.

한 언어가 여러 가지 번역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경우가 바로 영어 번역입니다. 현재 영어권에서 활용되고 있는 번역은 약 50여종입니다. 이들 50여종의 영어 번역들을 보면, 물론 표현이나 용어나 구문은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만, 80%이상의 번역이 우리말 [개역]이나 [개정]과 같고, 20% 정도의 번역이 우리말 [새번역]과 같습니다.

그리스어 동사 ‘비아제타이 βι?ζεται’는 문법적으로 두 가지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다”([개역], [개정])라고 뜻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 번역은 그리스어 동사가 지닌 문법적 수동태 passive의 의미를 옮긴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새번역])라고 뜻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가 지닌 문법적 중간태 mi- ddle의 의미를 옮긴 것입니다. 한 낱말이 그것이 지닌 문법적 기능에 따라 이렇게 두 가지 이해가 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해석에는, 다음에서 보듯이, 네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1). 중간태의 의미를 취할 때 한 가지 해석 가능성과, 수동태의 의미를 취할 때 세 가지 해석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우리말 [새번역]에서 보듯이 그리스어 동사 ‘비아제타이’를 그리스어 중간태로 본다면 “하늘나라”가 그리스어 동사의 주어가 됩니다. 즉 “하늘나라”가 “힘을 떨친다.”는 것입니다. 이 때 “힘을 떨치다”는 당연히 긍정적 의미를 지닙니다. 하늘나라가 강력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차지합니다.

(2) 우리말 [개역]과 [개정]에서 보듯이 그리스어 동사 ‘비아제타이’를 그리스어 수동태로 본다면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빼앗”습니다. 이 번역에는 세 가지 해석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침노”라는 말을 긍정적 肯定的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을,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절박한 열망,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기희생, 헌신 등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천국 통치 영역으로 물밀 듯 밀치고 들어가려고 하는 열성적인 사람들이 그 나라를 폭풍처럼 급습한다.”2)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천국으로 폭풍처럼 격렬하게, 구름처럼 떼 지어 쇄도 殺到한다”3)는 것입니다. “천국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천국으로 쇄도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4). 그러나 이런 해석에서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 “침노하는 자”를 가리키는 명사와 “(천국을) 빼앗다”라는 동사가 이렇게 좋은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설득시킬 설명이 필요합니다.

(3) 다른 하나는 “침노”라는 말을 부정적 否定的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고 할 때, “천국을 침노하는” 세력을 사탄의 세력으로, 곧 지상의 악한 권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고 하는 것은 지상의 악한 권세가 천국이 힘을 떨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입니다.

(4) [개역]과 [개정]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동일한 번역을 가지고서도 달리 이해하려고 하는 또 다른 해석은, 마 11:12 본문을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쟁취하려했던 유대 민족주의자들, 곧 열심당원(熱心黨員, Zealots) 혹은 그들과 유사한 독립운동가들의 운동과 연관시키는 해석입니다. 그들이 폭력으로 독립국가 건설을 도모했던 것을 이 본문과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여기 “하늘나라가 침노를 당한다”는 “폭력”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고, “침노하는 자”는 바로 열심당원들, 혹은 그런 뜻을 가지고 로마에 항거하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마 11:12에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가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이 구절 번역과 해석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말 번역이나 영어 번역들 중에 어느 것도 “악역 惡譯”이라거나 “오역 誤譯”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번역학계에서도 이러한 상이한 번역을 두고 어느 하나를 “악역”이나 “오역”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 예가 없습니다.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두 가지 서로 다른 번역에, 네 가지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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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ewman, B. M. & Stine, P. C., A Handbook on the Gospel of Matthew (UBS Handbook) (1988), 327-328쪽의 견해를 여기에서 소개함.
2) “they are pressing into the Realm of heaven?these eager souls are storming it!”, The Holy Bible Containing the Old and New Testaments, a New Translation(1922) by James Moffatt.
3) “men have been taking the Kingdom of Heaven by storm and impetuously crowding into it”, The Holy Bible: An American Translation(1976) by William F. Beck.
4) “a situation … in which the Kingdom of Heaven is stormed, and in which those who are eager to storm their way into it clutch at it”, New Testament (1969) by William Bar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