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12/2015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Their Names Is Today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저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영혼의 언어와 논리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Their Name Is Today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
원마루 옮김
포이에마, 2014








이 은 재


목사
산돌학교교장
성서공동체연대 대표
kszukero@hanmail.net






 

도스토옙스키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추억, 특히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들은 미래에 숭고하고도 강렬한, 유익하고도 아주 건전한 기억이 될 겁니다. 이것만은 잊지 마세요. 어른들은 여러분의 교육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지만, 유년 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인생에서 그런 추억을 많이 간직하면 한평생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 추억 중에 단 하나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되면, 그 추억은 언젠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또한 아름다운 이 추억이 우리를 커다란 악으로부터 지켜줄 겁니다.”(p. 193에서 재인용)

‘부모님과 함께 한 추억’을 우리는 얼마나 갖고 있는가? 우리는 그 추억이 우리 영성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프로이트는 창세기에 나오는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인간의 내면 안에 탄생한 신의 형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형상은 고양된 exalted 아버지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포이에르바흐의 저 유명한 신학적 테제,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의 심리학적 버전이라 하겠다.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이 연구한 인간 내면에서의 <신의 탄생>은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한 인간의 영성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그리고 제2의 부모라 할 수 있는 교사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 아이는 평생 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 것인지가 결정될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교육학의 범주에 가까운 책을 영성도서에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목사이다. 그는 브루더호프를 설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손자로 평화운동가이며 수많은 독자를 가진 저명한 저술가이다. 이 작은 책은 그의 깨달음과 신념, 또 살아있는 공동체가 실천과 경험을 통해 얻은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부르더호프의 교육철학은 단순하다.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의 스승으로 하느님이 보내주신 경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프뢰벨 Friedrich Froebel이 말한 대로 ‘하느님의 땅에 두 발을 굳게 딛고 눈을 들어 진실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땅과 하늘을 모두 가슴에 품은 그런 사람’으로 교육하려고 한다.(p.44) 우리는 그것을 영적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다움’은 이 책이 말하는 핵심 열쇠말이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는 것처럼, 아이들로 하여금 아이가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라 할 수 있다.


아이야, 내가 너를 가르쳐야 한다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
아이가 되어야지.
한 아버지의 아이들 말이야.
그때 나는 배운 걸 모두 잊을게.
어른의 세계와
방해만 되는 지식을 모두 잊을게.
그때는 네가 나를 가르쳐주겠니?
너의 생생한 경외심으로
내가 땅과 하늘을 보도록
도와주겠니?
(제인 타이슨 클레멘트, p. 61)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의 아이들이었지만,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고 너무 일찍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왔다. 그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 자연과 우주 안에서 우리는 아빠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신비와 보물들로 가득 찬 우리의 삶과 그것을 찾아 나선 수많은 영웅들의 모험 이야기들을 듣지 못한 채 자라왔다. 인터넷과 게임 같은 가상현실에 살며 현실감reality을 상실하고, 단절된 관계, 맘몬이즘, 비뚤어진 욕망에 갇혀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삶은 점점 더 지치고 의미 없고 지루한 그런 것이 돼버리지 않았는가? 이제는 우리 내면의 아이들을 되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그것이 교육이라고, 그것이 영성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미국을 방문하고 나서 마더 테레사가 한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물질이 남아도는 곳은 이제껏 본 적이 없습니다...또 그렇게 영혼이 빈곤하고 외로움과 박탈감이 넘치는 곳도 본 적이 없습니다...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은 결핵이나 나병이 아니라...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 빈곤입니다.”(p. 92)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교육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가르치시는 방식이다. 사랑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된다. 이 사랑에 이르는 길을 우리는 영성이라 부른다. 즉 교육과 영성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하며 사랑을 주는 것이다. 아픈 아이를 밤에 혼자 두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며(야누슈 코르차크, p.133), 길을 잃은 아이는 울면서도 여전히 반딧불을 잡는 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요시다 류스이, p.136), 유대 하시즘의 격언처럼 아이가 길을 따라 내려가자 천사들이 앞서가며 외치는 것이다. “거룩한 분의 형상을 위해 길을 내어라.”(p.158)

또한 저자는 오랜 교육의 경험과 영성가의 직관을 바탕으로 소위 말썽꾸러기로 분류되는 아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p. 135이하) 소위 ADHD처럼 아이들을 이런저런 심리학적 장애로 규정하는 진단들은, 오히려 유년기의 특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ADHD는 지나친 속박에 대한 아이들의 방어기제이자 울분을 발산하는 자연스러운 반사 작용으로 볼 수 있으며(피터 브레긴), 아스퍼거스나 자폐의 특성들은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ADHD의 처방약으로 쓰는 리탈린이 세계인구 5%의 미국에서 전체 처방률의 85%를 차지한다는 것은, 아이 하나를 양육하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교육철학 대신 한 알의 약을 선택한 현대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p.139)

모든 부모들의 영원한 숙제, 무엇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오직 사랑뿐이다. 부모들은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이다. 이 책의 이전 판 제목처럼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이다. 아이들과 함께 주어진 시간은 매일 오늘 뿐이다. 오늘, 아이들을 믿고 놓아두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임을(p.182), 오랜 대안학교의 경험을 통해 필자도 깨닫는 것이다. 영성이란, 하느님을 믿고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을 믿고 아이들을 나의 손이 아닌 하느님의 손에 맡기는 것, 그것이 영성이 아닐까? 화살이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팽팽하게 한껏 구부러진 활처럼(칼릴 지브란), 모든 부모가 ‘하느님의 손에 붙들린’ 활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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