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8/2009

 

 

 

 

 

 

 

 

 

 

 

 

  현장의 소리

 

평화 : 먼 길 돌아서 가기

 

  말씀과 세상(22)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날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책 없는 강경 일변도 또한 불안 요인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앞선 정부들에 대한 ‘북한 퍼주기’ 논란을 등에 업고 효과적으로 정치적 승기를 잡는 데 성공한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한에 대한 대책은 속수무책입니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 이들이 정작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는 미국의 바짓가랑이나 붙잡고 매달리는 형국입니다. 그나마 쥐구멍만한 소통의 통로였던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의 문은 굳게 닫혔고, 개성공단의 문도 존폐 위기에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연일 좌파 척결과 북한 때리기 깃발을 휘날리는 보수단체,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방공호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안보 당국자들의 발상입니다. 이만하면 과연 ‘안보장사’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닌 듯싶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멀고도 험한 시나이 반도를 지나 가나안 턱밑인 가데스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이들 앞에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두 개의 길이 있었습니다. 에돔을 통과하는 잘 닦여진 가까운 길과, 모압의 험한 사막지대를 돌아서 가야 하는 먼 길입니다.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가깝고 잘 닦여진 길을 통과하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합니다.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민 20:17) 라고. 에돔 왕은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모세는 결코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며 다시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그래도 에돔 왕의 태도는 거칠기만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은 험한 길을 돌아서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들이 들어선 길이 얼마나 험했든지 백성들은 ‘이 거친 사막에서 우리를 다 죽일 것이냐’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마실 물도 없지, 먹을 것은 거칠지, 불뱀에 물려 죽는 일까지 빈번하자 백성들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신명기(2:4-5)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 길에서 에돔과 다투지 말고, 모압과도 다투지 말고, 암몬과도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의 땅은 옛적에 이삭에게 준 땅이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준 땅이라는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이들 나라는 이스라엘과 조상이 같은 형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형제 나라들과 전쟁을 통해서 열 수 있는 쉽고 빠른 길을 피하는 대신 험하기 이를 데 없음에도 ‘평화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고통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해방 사건은 장차 예수께서 성취하실 구원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그런 구원의 예표가 되는 출애굽의 목적지인 가나안 입성을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을 가게 했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입니다. 물론 후대의 이스라엘은 먼 길을 돌아서 가기보다 항상 빠른 길을 더 선호했습니다. 번영에 대한 조급함과 권력의 야욕으로 전쟁과 억압과 우상숭배를 일삼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고통으로 점철된 것은 평화의 길을 거부하고, 쉽고 빠른 길만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후대로 내려올수록 선민의식에 배타주의가 발호하면서 소통을 거부하고, 전쟁의 길만을 재촉했습니다. 마침내 저들이 바라는 평화는 단지 ‘샬롬!’이라는 인사말로 의식화되었을 뿐 실생활에서 평화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평화의 길을 예수께서 다시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 시험, 고난, 죽음은 고통스럽기 이를 데 없는 ‘평화의 길’ 그 자체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마치 불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예수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그 입 속으로 들어가신 것은 ‘평화의 길’에 대한 확고한 의사 표현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욕망과 자만심에 가장 부합하는 쉽고 빠르고 가까운 길입니다. 전쟁이 비참한 것임에도, 실제 전쟁을 결정하는 이들은 아침 식탁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장사꾼들은 손익계산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평화의 길’은 멀고 힘들고 돌아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죄악의 인류 역사는 돌아서 가는 ‘평화의 길’보다 쉽고 빠른 ‘전쟁의 길’을 더 선호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실제 선호하는 것은 정복과 승리입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렇게 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것인가? 이스라엘 역사는 분명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장의 소리

 

소금 과잉섭취의 폐해는 결코 없다!

 

  소금과 자연의학(10)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의 원인도 소금 때문이 아니다-  

 

 

 

 





정종희

민속의학 연구소 소장,
전남개발공사 천일염사업부 자문위원,
“소금, 이야기” 공동저자.
jhlusia@hanmail.net






 



소금이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의 원인이라고 현대인들은 소금을 어찌하면 적게 먹을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고혈압은 소금을 많이 먹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체에는 60조에서 100조개의 세포가 있다고 했다. 세포의 안벽에는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의 소화 흡수를 돕기 위한 칼륨이 들어 있고, 세포외핵 extracellular에는 많은 양의 나트륨이 존재한다. 칼륨은 세포내벽에서의 단백질 등의 영양 흡수의 기능을 다 마치고 배출되어야 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칼륨 하나가 빠져나가면서 나트륨 두 개가 들어가서 체액의 산-알칼리를 조절하고 체액의 삼투압 유지와 수분의 상실방지 기능을 하는가 하면 근육의 정상상태와 양양분의 세포 내 투과 등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잘못된 인공화학염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거나 소금이 무조건 해롭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소금을 덜 섭취함으로서 인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자연염을 통해서만 공급되는 나트륨 결핍현상이 생겨 세포 내에서 단백질의 합성기능을 다한 칼륨이 세포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처 배출되지 못한 칼륨은 세포 속에서 세포를 팽창시키게 된다. 혈관 또한 세포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세포가 팽창되면 혈관의 공간이 좁아지게 되어 혈관 속의 압력이 올라가게 된다. 이같이 피가 많아서 고혈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트륨 부족현상으로 인해 칼륨이 배출되지 못해서 고혈압이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단백질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데, 단백질 식품에는 단백질의 소화 흡수를 위한 칼륨이 다량 들어 있다. 이처럼 음식물의 대사를 돕는 칼륨이 다량으로 들어 있는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거나 잘못된 소금을 지속적으로 먹게 되면, 칼륨과잉으로 비만과 콜레스테롤도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재료 가운데 단백질을 많이 함유한 것일수록 칼륨이 많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콩의 경우를 보면 단백질을 42퍼센트나 함유하고 있으나, 반면에 단백질 대사를 위해 많은 양의 칼륨도 함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콩에는 나트륨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콩처럼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좋은 소금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칼륨과다로 인해 고혈압 등의 성인병이 발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짜게 먹어서 고혈압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혈압은 인체대사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하여 혈관 속의 노폐물이 배설되지 못하여 피가 탁하게 되고, 혈관 속에 기름이 끼는 등 혈관이 좁아짐으로써 피의 순환을 위한 더 많은 압력이 필요하게 되어 일어나는 병적인 현상이다.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혈관 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고, 피를 맑게 해야 한다.

좋은 소금은 가장 먼저 피를 맑게 하고 체내의 노폐물을 삭여서 외부로 배설을 촉진시키는 데 탁월한 일꾼이며, 썩는 것을 막는 데 그 무엇보다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고혈압 환자에게 좋은 소금섭취를 줄이거나 금지시키는 것은 더욱 병을 부채질하는 일일 것이다. 오히려 고혈압 환자일수록 죽염과 같은 좋은 소금의 섭취를 늘리는 것이 올바른 치료법일 것이다.

이처럼 좋은 소금의 작용을 안다면, 잘못된 소금의 섭취가 고혈압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의사들이 신경을 쓰고 연구해 본다면, 결코 고혈압 환자에게 소금을 적게 먹거나 금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지는 않을 것 이다. 국민들의 소금에 대한 인식도 문제이지만, 국민건강을 돌보는 의사들이 소금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의사들이 좋은 소금의 섭취가 부족할 경우 인체의 소화, 흡수, 배설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인식을 새롭게 가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소금의 중요성을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병원에서 단백질 식품이라 하여 꼭 먹기를 권하는 두부는 소금에서 빠져나온 간수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실상 권할 만한 식품이 아니다. 두부를 응고시키는 간수 속에 들어 있는 카드뮴, 납, 수은 등의 독극물들 때문에 오히려 인체에 해롭다. 특히 당뇨를 앓고 있는 조직이 약하고 예민한 환자들이 두부를 먹을 경우, 시신경과 성대신경 등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의사들이 이제 소금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소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에 관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인체 내의 나트륨 분포를 보면 골격조직의 무기질 부분에 3분의 1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세포외핵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 소금의 부족현상은 뼈를 약하게 만들고 관절염과 같은 병을 유발시킬 수 있다. 소금은 뇌세포 등 모든 신경조직을 포함한 인체세포의 생성에 관여하므로 소금이 부족하면 당연히 인체세포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단백질의 화학적인 반응은 식염농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단백질의 응고작용과 용해작용, 세포 탄력증강작용, 글루텐 형성의 촉진작용 등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인체에 좋은 소금이 부족하게 되면 뇌세포를 비롯한 모든 인체조직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 중 30% 이상이 신경정신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 또한 잘못된 소금의 섭취와 좋은 소금의 체내 부족현상으로 신경세포가 약화됨으로써 오는 현상이다.

소금의 과잉 섭취란 없다. 최근 나트륨의 과잉섭취에 대한 논란이 끝없이 전개되고 있으나, 나트륨의 과잉상태가 일어날 때는 자동적으로 물이 먹고 싶어지게 된다. 그리고 수분의 섭취는 나트륨 농도를 낮추면서 배설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트륨의 체내 과잉상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운동이나 등산 등을 하고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인체에서 염분이 빠져 나가게 된다. 운동 등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적절한 염분 섭취가 따라 주지 않는다면, 팔다리와 복부의 근육경련, 두통 혼수, 구토, 설사 등 여름에는 일사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또 염분의 오랜 섭취 부족현상으로 순환과 대사부족 현상 등으로 관절에 이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운동을 한 뒤에 충분한 양의 좋은 소금을 먹는 일이 꼭 필요하다. 하늘이 생명을 내기 전에 이 땅에 소금을 내신 그 소금의 진가를 잃어버려 현대인들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이제는 인식해야만 한다. 소금이 제자리를 잡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인간의 건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가 잃어버린 소금의 진가를 진정 되찾고 당신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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