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달력에서 7월은 ‘사슴이 뿔을 가는 달’, ‘천막 안에 앉아있을 수 없는 달’, ‘옥수수 튀기는 달’, ‘들소가 울부짖는 달’, ‘산딸기 익는 달’,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이다. 우리네 7월은 어떤가? 이육사의 시처럼 ‘청포도가 익어가는 달’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바캉스 행렬이 줄을 잇는 달’이다.

썰물처럼 우르르 도심을 빠져나가는 바캉스 행렬을 보고 있으면, 무조건 부러운 생각이 든다. 머리로는 떠나봤자 고생인 줄 뻔히 알면서도, 몸은 자기도 그 행렬에 끼고 싶어 좀이 쑤신다. 하여, 열 일 제쳐두고 일단 휴가 길에 오르면, 역시나 ‘행복 끝, 고생 시작’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 교통 체증, 바가지요금, 쓰레기더미로 짜증만 더해지니, 괜히 왔다 싶은 생각에 ‘내 집이 최고’를 연발하게 된다. 집에 있으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고, 집 떠나면 도로 집에 가고 싶으니, 인간은 과연 청개구리인가?(여기서 잠깐, 듣는 청개구리 입장에서는 무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간다. 괜히 인간이 자기네 종족의 특징을 청개구리에게 투사해 엄한 욕을 먹이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피서지는 동해안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동진 正東津은 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에 유명해진 추억의 명소다. 그러나 정동진이 본래 “전설의 고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 하여 ‘등명사 전설’이다.

옛날 조선시대 어느 임금님이 심한 안질에 걸렸다. 용한 의원들이 치성을 드려도 낫지를 않자, 점쟁이를 불러다가 점을 쳤는데, 왕궁의 정동 쪽에 있는 큰 절에서 너무 많은 쌀뜨물을 동해바다로 흘려보내 용왕님이 눈병을 앓고 계시다는 점괘였다. 이 참상을 알리기 위해 임금님도 덩달아 같은 병에 걸렸다 하여, 알아본 즉, 과연 정동진 마을 궤방산 기슭 등명사에서 쌀뜨물이 마구 동해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임금님이 이 절을 폐쇄하자, 눈병도 낫더라는 이야기다.

이 전설은 놀랍게도 바다오염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임금님과 용왕님이 똑같이 눈병에 걸렸다는 대목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동 운명을 깨닫게 된다. 바다오염의 원인이 쌀뜨물인 것처럼 나오지만, 정작 문제는 등명사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쓰고 버리는 오물의 양도 많아지게 되어 있다. 사람이 자연을 오염시키는 정도가 자연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을 초과해버리면, 자연이 병들고 만다. 그리고 자연의 아픔은 고스란히 인간의 아픔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등명사 전설은 좁은 국토에서 비슷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로 몰려다니는 우리의 휴가문화를 반성케 한다. 자연은 세파에 찌든 우리에게 위로와 활력을 선물하지만, 우리는 자연에게 몹쓸 상처만 남겨주고 냉정히 도시로 귀환한다. 그리고는 자연이 베풀어주는 고마운 은혜를 잊어버린 채, 철저히 반 反자연적인 도시인으로 살아간다.

이 땅의 산하 山河가 건강해야, 우리도 비로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정설이며 철칙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수용가능성ㆍ지탱가능성을 배려하는 ‘그린 바캉스 Green Vacance’를 실천할 수는 없을까? 모두 다 피서지로 떠난다고 할 때,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사실은 돈도 없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기 위해서(이 얼마나 당당하고도 멋진 말인가!), 나 홀로 ‘방콕(방에 콕 틀어박혀 있음)’하거나 ‘방굴라데시(방에서 뒹굴거리며 쉼)’하는 것도 일종의 그린 바캉스이다. 휴가와 관련된 모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면, 나만의 고유한 휴가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인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생의 시골을 황폐화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부자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를 피서지로 이용하면서 그네들의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짓, 곧 형제살해의 원죄가 오늘의 휴가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휴가철만큼은 청개구리가 되어도 좋으리라. 자연에 스트레스를 더해주는 휴가 대신에 자연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휴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7월은 비로소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청포도처럼 풍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