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성의 시대이다. 입 가진 사람들은 모두 영성을 말한다. ‘영성’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을 수식해도 어색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어떤 이는 이웃 종교의 영성을 넘나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동양의 영성을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기존에 우리가 쓰던 단어들이 구태의연해졌다고 그것을 대체하는 용어로 쓰기도 한다. 누구나 영성을 말하고, 어떤 것을 수식해도 어색하지 않고, 모든 것을 대체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영성이라는 것의 실체가 모호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싫다. 그러나 진정으로 영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길 바라며 영성의 시대를 갈구한다.

‘영성’이라는 말의 뿌리는 어디일까? 이 책은 동방교회의 영성의 뿌리를 드러낸다. 이것은 진정한 영성의 맥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근원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게는 헤시카즘 영성의 근원이 어디서 시작하였고, 오늘에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설명한다. 이 근원에 가 닿지 않으면 영성이라는 것이 한갓 말장난이나 유행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근원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한국교회를 덮고 있는 경박함과 천박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요한 메옌도르프는 정교회 영성의 역사와 신학을 압축하여 소개한다. 그래서 ‘그레고리 팔라마스와 정교영성’이라는 번역이 옳다. 압축하여 소개하다보니 정교회 영성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점도 있지만 정교의 영성의 요점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유대 예언 전통으로부터 영성의 물줄기가 어떻게 14세기 아토스에 까지 흘러 들어와서 헤시카즘의 전성기를 이루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런 물줄기를 형성한 뛰어난 신학자들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 마카리우스, 닛사의 그레고리와 막시무스, 그리스도 중심의 신비주의에 대한 강한 사실성, 특히 성사적 사실주의를 강조했던 신 신학자 the New Theologian 시메온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에바그리우스와 신플라톤 철학의 관계, 에바그리우스와 마카리우스의 종합을 이루어 ‘예수기도’를 발전시킨 디아도쿠스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정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그레고리 팔라마스이다. 정교에서는 이 팔라마스의 공헌을 기려 사순절 둘째 주일을 그를 기리는 찬가를 바친다. 팔라마스는 발라암과 논쟁을 통해서 플라톤주의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신학과 영성, 교회와 기도, 관상과 활동의 통합을 이루어 낸 위대한 인물이다. 발라암과 팔라마스의 논쟁은 성서와 희랍 사상 간의 갈등이며, 예루살렘과 아덴, 사도들과 철학자들, 성육신과 육체의 부활을 믿는 신앙과 육체이탈과 영혼불멸을 믿는 종교 간의 갈등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갈등의 요소는 아직까지도 현대교회 안에 잠복해 있고 극복해야 할 요소인 듯하다.

팔라마스이후 헤시카즘 영성이 어떻게 흘러 현대까지 왔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이 종말을 고한 후 헤시카즘 영성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꽃피웠는지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명의 순례자의 저서로 알려진 “순례자의 길”과 “필로칼리아”가 어떻게 번역되어 소개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세라핌을 통하여 러시아의 빛의 신비주의 영성이 어떻게 꽃피웠는지 발견하게 된다. 이런 신비주의 앞에 서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신앙의 깊이가 어디인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는 “크리스천 신비주의”이다. 크리스천 신비주의는 중핵은 바로 그리스도중심의 신비주의이다. 이 그리스도 신비주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기도에 있다. 그리하여 예수 기도는 단순한 하나의 기도가 아니라 정교의 영성 그 자체이다.

『요한 메옌도르프, 성 그레고리 팔라마스와 정교영성』St.Gregory Palamas and Orthodox Spirituality 박효섭 옮김, 야소암 (같은 책의 다른 번역본으로,『동방교회의 신비신학자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박노양 옮김, 누멘)

** 나는 이 책을 박효섭 목사님의 번역본(『요한 메옌도르프, 성 그레고리 팔라마스와 정교영성』)으로 읽었다. 박 목사님은 오랫동안 수도원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 오신 분이시다. 그러나 이 번역본은 시중에 구할 수가 없다. 박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인쇄를 해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시중에 구할 수 있는 책은 박노양 번역본『동방교회의 신비신학자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글을 쓰면서 박노양 번역본도 절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소개했는데 그 책을 구할 수가 없다면 그림에 떡이 될 수밖에. 그래서 박 목사님이 번역한 책의 문서 파일을 홍소윤 목사님께 보낸다. 책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은 홍 목사님께 연락하여 그 파일을 봐 주셨으면 한다. 제본된 책이 아니라 눈을 피로하게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영성은 명료해질 것이다. 근원을 알고 그 근원에 가 닿으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