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소리로 물을 느낀다. 어느 지점에서 얼만큼의 양을 쏟아내고 있는지, 물을 보면 아픔이 느껴진다. 위에서 아래로 바위에 떨어지는 물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물속에 있는 바위도 아프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의 무게를 느끼며 물이 폭압적으로 다가온다. 바위는 바위인 채로 그냥 고요히 있고 싶다. 물은 물인 채로 흐르고 싶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폭포, 이미 물이 아니다. 인위적인 건 아름답지가 않다. 그저 신기할 뿐, 인간의 기술을 뽐내는 것일 뿐. 물은 흐르기를 원하지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물은 현기증을 느낀다. 위에서 밀어내기에 할 수 없이 떨어지는 반복적인 일을 할 뿐, 즐겁지가 않다.

인공 폭포는 서럽기까지 하다. 목 놓아 우는 노숙자의 울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밀려난 40대 초반 가장의 핍절한 울음처럼, 인력시장에 나갔으나 오늘도 거절당한 이 씨는 새벽부터 24시간 매장에서 산 소주로 빈속을 달랜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한 병 뿐인데, 호주머니 안에 달랑 집에 갈 차비뿐이 없는데 소주가 더 먹고 싶다. 맨 정신이 견딜 수가 없어 서럽게 목 놓아 운다. 오늘 따라 아내의 얼굴과 해맑은 아이들이 더 그립다.

난 요즘 치유글쓰기반을 인도하고 있는데 한 회원이 “남편 집에 얹혀산다”고 했다. 그녀는 지역여성회 대표로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인 자그마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아 출자하고 빚을 얻어 만든 카페인데 실제 오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한 사람의 인건비도 나오지 않은 적자상태이다. 오히려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얻어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지역주민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공간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여전히 경제적으로 빈곤한 그녀는 남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십 만원이라도 벌어 오라”는 남편의 말은 그녀의 가치를 사정없이 하락시켰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 집에 얹혀산다는 표현을 한 게다. 말을 전하는 이나 듣는 우리 모두다 씁쓸하고 안타깝다.

시간이, 시대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가슴 한 켠이 저리다가도 이건 아니구나 싶다.

요즘 우리 교인들의 사정도 편치가 않다. 몸으로 노동하는 이들은 허리도 다치고 손가락도 다치고 수술하는 이들도 생기고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하다. 마음을 비우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만큼 고달프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기에, 현실 앞에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이 처절하다.

지금 우린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 이미 돈의 가치는 무한대로 팽창하여 인간을 점령하고 말았다. 인간은 물질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돈이면 다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돌고 돌아야 돈인데 이상하게 어느 지점에 정체되어 풀리지 않는 게 요즘의 경제의 흐름이다.

오늘도 신문에, 사는 게 힘들다며 자살한 세 자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경제적인 곤란은 단 하나인 목숨마저 가져간다. 상대적인 빈곤은 열패감과 적대감으로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늘 시민인 우린 또 다른 땅의 것을 갖기 위해 탐욕스런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지. 자기를 겸허히 돌아보고 주신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기 보다는, 더 가지려고 간구하는 끝도 없는 길을 가지 않는지. 이미 주신 하늘의 넘치는 사랑과 말씀 앞에 우리의 눈은 어딜 보며 가고 있는지. 자신이 가진 재산이 하늘에서 주신 축복이라면 가진 것 하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교인들은 하늘의 저주인가. 그들에게 주신 부는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라는 하늘의 마음일 텐데.

가난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욥의 후예들에게 백석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