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들었습니다. 종말의 날에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 사람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는 풍문을. 듣고 보니, 사교집단이 나올 때마다 자신들이 바로 이 숫자에 들어가는 구원받은 자라는 주장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지금까지 지구행성에서 살았던 억조창생 億兆蒼生의 중생은 고사하고, 지금 지구 인구 75억 중에 하나인 내가, 한반도에서 같은 말을 쓰면서 살고 있는 남북한 7천 7백만 언중 言衆 중에 하나인 내가, 이렇게 가까운 이웃과 함께 평범하게 사는 내가, “십사만 사천 명”에 든다는 것은, 비록 모태신앙이지만, 처음부터 언감생심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그리고 어디 이 지구 위에 우리나라 사람만 사나요? 우리나라 사람만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서 산다면 그 종교가 어디 인류를 구원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십사만 사천”이란 말이 성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니, <햇순>에서 성경 난해구 해설을 맡으신 분께 좀 여쭙고 싶습니다. 대략적인 개념이라도 소개 받고 싶습니다. 대구에서 신호영 申祜永 드림

신호영 님, 맞습니다. “십사만 사천”은 신약성경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 두 번 언급된 말입니다. 먼저 본문을 확인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12 지파에서 나온 “십사만 사천”

4 내가 들은 바로는 도장이 찍힌 사람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마에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5 도장이 찍힌 사람은, 유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갓 지파에서 일만 이 천 명이요,
6 아셀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7 시므온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레위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8 스불론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요셉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새번역 계 7:4-8)

여기 처음으로 언급된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계 7:4b)입니다. 그들은 달리 “하나님의 종들”(계 7:3)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렇게 뽑혀 나온 무리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일까요, 해 돋는 쪽에서 올라 온 한 천사가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도장”을 찍습니다(계 7:2-3). 말하자면, 그들은 각자의 이마에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이들입니다.

이어지는 본문(계 7:5-8)에는 그들이 나온 12 지파의 이름들과,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의 숫자가 각각 일만 이천 명씩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본 이 엄청난 무리의 수가 “십사만 사천”이라고 한 것은 요한이 “들은” 겁니다(계 7:4a). 요한이 직접 세어 본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잠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 무대에는 “십사만 사천 명”과 “다섯 천사들”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도 없고, 어린양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은 다음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2. 모든 나라에서 온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

요한이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씩 나온 십사만 사천 명의 무리를 보고난 다음에, 그는 또 다른 무리를 봅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계 7:9a)를 봅니다. 그들은 “십사만 사천”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도 아닙니다.
요한의 증언을 따르면, “그들은 모든 민족 民族과 종족 種族과 백성 百姓과 언어 言語에서 나온 사람들”(계 7:9b)입니다. 민족이 다르고, 종족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 있고”(계 7:9c),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계 7:11b)를 합니다.
보좌 앞에 서 있던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계 7:14b)이라고,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계 7:14c) 그 옷을 희게 한 사람들이라고,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계 7:15a) 있다고,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그 밖의 어떤 열도 그들 위에 괴롭게 내려 쪼이지 않을 것”(계 7:16)이라고,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계 7:17)이라고 소개합니다.

<햇순 279호 표지 참조>
제목 : <거룩한 어린 양께 경배> (1426)
얀 봔 에이크 형제
유채판화, 전체(350×461cm) 중 메인 패널 (137.7 X 242.3cm)의 세부.

3. 땅에서 구원을 받은 숫총각 십사만 사천 명

요한이 세 번째로 본 무리가 있습니다. 숫자는 요한계시록 7장에서와 같이 동일한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 그러나 7장에서 언급된 “십사만 사천”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 차출되어 나온 사람들입니다만 14장에서 언급된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 차출되어 나온 사람들이 아니고, “땅에서 구원받은”, 혹은 “땅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온”1) “십사만 사천 명”(계 14:3), 혹은 달리 “사람들(인류) 가운데서[‘이스라엘 가운데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혹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온”(계 14:4)2)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노래하는 무리들입니다. 그 노래는 그들만이 배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계 14:3). 누가 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는 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14장에 언급된 “십사만 사천 명”은 7장의 경우에서와는 달리, 노래하는 “십사만 사천”입니다. 문자대로만 본다면, 모두 다 여자 경험이 없는 남자들, 곧 숫총각들입니다.3)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개역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개정계 14:4);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사람들이며 숫총각들”(공역 묵시14:4);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새번역 계 14:4a)로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은 문자대로만 본다면 일단 “숫총각” 그룹입니다. 그러나 상징이나 비유를 사용하는 묵시문학을 문자대로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사람들(곧, 남자들)”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전체맥락에서 볼 때 비성경적입니다. 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 제정하시고(창 2:24),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시어서 혼인을 축복하신 것(요 2:1-12)을 볼 때 남녀의 혼인관계와 동침이 몸을 더럽히는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구약에서 우리는 우상숭배가 몸을 더럽히는 간음으로 설명되는 예를 봅니다(렘 31:32; 겔 17; 23; 호 2:15 등). 이런 예에서 우리는 계시록 14장 4절을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 실마리를 얻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계시록 14장 4절의 경우, 번역은 문자대로 하고, 해석은 비유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영어 번역들 중에서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GWN, MSG, NLT 같은 번역들은 “그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남자]들이었다”(παρθ?νοι γ?ρ ε?σιν)라고, 4b절만 번역하고, 4a절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ο? μετ? γυναικ?ν ο?κ ?μολ?νθησαν)이라는 표현은 생략해 버리는 것은 과잉 친절을 범하고 있습니다.4)

묵시문학을 번역하면서 묵시문학의 장치를 번역 과정에서 번역자가 미리 벗겨버리면 묵시 문학 본래의 긴장이 해소되어 버리고, 독자의 흥미도 역시 그만큼 줄어들게 되지요.

4. 셀 수 있는 무리, 셀 수 없는 무리

우리는 세 종류의 구원받은 무리를 확인하였습니다. 1)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뽑혀 나온 “십사만 사천”(계시록 7장), 2) 땅에서, 혹은 인류 가운데서 구원 救援받은/혹은 구속 救贖받은 “십사만 사천”의 숫총각(계시록 14장), 3) 그리고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 곧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계 7:9-17)를 확인하였습니다.

신호영 님은 저처럼,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십사만 사천”에 대한 다수의 호기심이나, 거짓 종교가들과 사이비 신흥종교의 훤히 보이는 사기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현상들은 늘 명멸 明滅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귀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인류역사 이래 지금까지 지구행성에서 살았던 억조창생 億兆蒼生의 중생은 고사하고, 지금 지구 인구 75억 중에 하나인 내가, 한반도에서 같은 말을 쓰면서 살고 있는 남북한 7천 7백만 언중 言衆 중 하나인 내가, 이렇게 가까운 이웃과 함께 평범하게 사는 내가, 십사만 사천 명에 든다는 것은, 비록 모태신앙이지만, 처음부터 언감생심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그리고 어디 이 지구 위에 우리나라 사람만 사나요? 우리나라 사람만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서 산다면 그 종교가 어디 인류를 구원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는 말씀, 질문이라기보다는 슬기로운 제안을 하신 것이 소중하게 생각되어 저 역시 귀하의 생각에 참여하고 싶어서 이상과 같은, 아직 정리가 덜 된 소견이나마 서둘러 밝힌 것입니다. 참고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좋은 의견 주신 것에 대해 거듭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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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ο? ?γορασμ?νοι ?π? τ?? γ?? (Rev14:3GNT); “who had been redeemed from the earth” (Rev14:3NET); “who had been purchased from the earth” (Rev14:3NAS);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개역 계 14:3); 땅에서 속량(贖良)함을 받은 (개정 계14:3)
2) ο?τοι ?γορ?σθησαν ?π? τ?ν ?νθρ?πων (Rev14:4GNT); “They were redeemed from the human race” (Rev14:4CSB); “were redeemed from humanity”(Rev14:4NET); “These have been purchased from among men” (Rev14:4NAS); “사람 가운데서 구속(救贖)을 받아”(개역 계 14:4);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贖良)함을 받아”(개정 계14:4)
3) “These are they which were not defiled with women; for they are virgins.”(Rev14:4aKJV); “It is these who have not defiled themselves with women, for they are virgins”(Rev14:4aESV); “It is these who have not defiled themselves with women, for they are virgins”(Rev14:4aNRS). 여기 “virgin”은 꼭 “처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정남(童貞男)”을 뜻하기도 한다. 순결(純潔)과 정절(貞節)을 지킨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십사만 사천”이 모두 남자라는 말이다.
4) “These 144,000 virgins are pure.”(Rev14:4aGWN); “They.... lived... virgin-fresh before God.”(Rev14:4aMSG); “They have kept themselves as pure as virgins,”(Rev14:4aN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