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두고 이 땅에 평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전쟁이 계속되고 지구의 수많은 지역에서 갈등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현실에서 평화는 온 인류의 절실한 염원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평화의 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고 평화는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사회계층에 따라, 연령과 성별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이해되어 왔습니다.

나는 평화에 대한 생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째, 가시적인 평화와 비가시적인 평화입니다. 가시적인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인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말했던 에이레네가 그것입니다. 비가시적인 평화는 빈곤이나 인권억압과 같은 구조적인 폭력, 언어나 관습을 통해서 일상화된 폭력이 저지되거나 극복된 상태를 뜻합니다.

둘째, 소극적 의미의 평화와 적극적 의미의 평화입니다. 전자는 전쟁과 폭력을 방지하고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를 가리키고, 후자는 전쟁이나 폭력을 유발시키는 여러 갈등관계를 사전에 조절하고 관리함으로써 평화를 모색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한 빈부 차이와 인종적, 성적 차별로 인한 갈등과 소외가 평화를 깨뜨린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셋째, 거짓 평화와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거짓 평화는 정당하지 못한 권력과 무력을 지닌 지배체제가 그것에 필요한 “질서”를 위하여 혼란과 폭력을 평정하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샬롬”으로 일컬어지는 하나님의 평화는 바른 관계에 근거한 평화, 정의에 입각한 평화입니다. 개개인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평안을 누리듯이, 집단이나 사회도 상호의존적인 공생의 조건을 충족할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염원과 노력이 아무리 지대하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평화를 이루시고 펼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런 의미에서 평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그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눅 1:78-79).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사람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마 5: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위협받고 파괴되는 현실에서 평화를 만들며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평화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생활세계에서 평화가 깨지는 일을 많이 경험합니다. 가정과 직장처럼 빈번한 만남과 친밀함이 형성되는 곳에서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물리적, 언어적, 심리적 폭력들이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 이질적인 문화와 타종교에 대해 비가시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평화 만들기의 첫걸음은 평화를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깨뜨리는 비가시적인 폭력을 찾아내는 감수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둘째, 평화적 감수성과 신앙의 고리를 맺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훈련되는 평화적 감수성은 이웃과 자연과 세계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폭력과 갈등으로 인한 고통에 무지하거나 무심하지 않고 그것에 민감해질 때, 하나님과의 대화는 깊어지고 길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고통받는 피조물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평화의 책임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무력이나 권력에 의지한 강자 중심의 거짓 평화와는 달리, 사람들이 인종과 성별의 차이, 문화와 계급의 차이를 넘어서서 서로 의존하고 서로 돕는 관계를 바르게 형성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님의 평화는 그 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를 필요로 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반전평화운동과 평화문화를 형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몫으로 평화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책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평화를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