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斷切은 고통의 단어다. 소통 疏通은 어느 시대나 중요한 가치였겠으나 우리 시대만큼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불통 不通에 길들여진 사회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이제는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예배 내내 표정을 읽기는 고사하고 누군지조차 헷갈리게 하는 마스크와 서로가 조심해야 할 오염체 汚染體인 듯 혹여 손끝이라도 닿을까 멀찍이 앉아있다가 쏜살같이 빠져나가야 하는, 혹은 빠져나가는 회중들을 보노라면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해진다. 이전처럼 손을 잡고 오손도손 속삭인다든지, 밥은커녕 커피 한 잔 나누는 것도 언감생심 焉敢生心이다. 표정의 언어, 스침의 언어, 나눔의 언어가 사라진 예배당 전경이라니! 그런 언어가 상실되고, 일방적(?)인 설교자의 외침이 맴돌다 말과 글의 언어만이 우수수 가라앉는 예배에 감화와 감동, 그리고 역사를 기대할 수가 있을까. 이 또한 단절의 아픔이다. 그러나 어쩌랴, 다만 돌들도 소리치게 하시는 그분을 바라볼 수밖에.

지난날에는 서울이 경기도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서 경기도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서울과 그 언저리에서 자랐다. 그 후 신학을 하느라 대전에서 4년을 보냈지만 대도시였는지라 사투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어느 지역이든 심지어 서울이라 하더라도 독특한 억양이나 특별한 단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서울·경기지역이나 대도시에서는 그 지역 사투리를 별로 의식할 기회가 없다. 참 묘한 것은 고향을 떠난 지가 40여 년이건만 아직도 이곳에서는 내 말소리를 서울깍쟁이(?) 말씨라고 하고, 고향 친구들은 충청도 양반이 다 되었다고 웃는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지만, 특별히 반박할 말도 없어 같이 웃고 만다.

그런 내가 처음 갯마을이라고 불리던 이곳에 부임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까만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라고 했던가. 선명하게 들리고 분명하게 받아 적을 수 있는 말인데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벅이고 있노라면 교회 식구들, 특히 청소년들은 뭐가 재밌다고 깔깔거리기 일쑤였으니 초년생 전도사가 얼마나 당혹스럽고 민망했겠는가. 그 기억을 더듬어 보노라니 대충 ‘시절’, ‘구락쟁이’, ‘눈감생이’, ‘고이’, ‘구이’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어디 단어뿐이랴. 같은 말도 억양에 따라 뜻이 달라지거나 불쾌하게 느껴지는 예도 있으니 참 쉽지 않은 적응 기간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지자체별로 ‘지역 사투리’의 가치를 인정해 보존을 위해 여러 노력도 하고, 지금 들으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 내게는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넘사벽’이었을 뿐이다.

지나간 날들을 회상할 때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 역시 후회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제일 후회스러운 일은 영어를 열심히 하지 않은 일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별로 열심히 할 이유를 몰랐다고나 할까. 나 같은 시골뜨기에게 평생에 외국에 나갈 일은 없을테고, 그저 학교 수업에나 필요하다고 느끼는 우물 안 개구리였으니. 물론 명색이 대학원 졸업이니 영어에 일자무식은 아니라 사전도 뒤척이고 하다 보면 대충은 소통이 되기는 한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뒤척이는 것은 콘사이스가 아니다. 한글사전도 아니다. 그렇다고 위키 wiki도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더 많은 경우에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올라온 글들을 읽노라면 수없이 핸드폰을 열고 낯선 어휘를 검색한다. 분명 외래어나 외국어 같은데 사전에서 찾아지지도 않고 우리말이 분명한듯한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 단어의 홍수, 흔히 말하는 신조어 新造語들 때문이다. 축약 縮約은 고사하고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어휘들, 그런가 하면 같은 ‘기호’ 낱말임에도 이전과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검색하기 위한 웹서핑이다. 그런 어휘들이 청소년뿐 아니라 이른바 ‘전문직’(?) ‘지도층’(?)의 글은 고사하고 방송에서도 쏟아지고 있으니 살아남으려면 어쩌겠는가.

어느 시대나 지역, 세대, 신문, 지식의 벽은 존재했고 그만큼 소통은 난제 難題였겠지만, 과학의 발달과 세계화로 지구촌 地球村을 당연시하는 이때 더욱 소통에 목말라해야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단지 어휘의 문제가 아닌 그리고 교회도 예외가 아닌 단절과 불통의 강력한 냉기 冷氣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바벨탑의 이야기는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심판을 증언한다. 이 시대의 불통, 혹 하나님의 심판은 아닐까? 두렵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