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도서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이 강의에 필요한 영성 이론 서적이 대부분이라서 선뜻 추천하기에 내키지 않았고, 영성가들의 직접적인 저술(일차 자료)은 무슨 이유인지 잘 번역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나의 책상 뒤의 책꽂이에서 바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많이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였다. 영성도서로 시만큼 적절한 책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대표적 신비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 시인이지 않은가! 평범한 우리 종교인들도 시를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시가 낯설지는 않다. 우리가 가장 즐겨 읽는 시편이나 예언서들이며,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시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찬송은 어떤가! 시를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를 즐겨 읽고 사랑하는 이들 역시 시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나는 설교가라는 호칭보다 시인이라는 호칭을 더 듣고 싶지만 아무도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시가 모두 영성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는 행동의 세계에서 잠시 멈추어 우리를 관상적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시는 부정적이고 모순으로 가득 찬 상황 속에서도 역설을 볼 수 있는 제 3의 눈을 열어주며, 연민과 용기를 갖게 한다. 시는 우리에게 직접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비유로 우회적으로 말하여 우리의 인격을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짧은 한 두 단어를 가지고도 단숨에 우주적인 지혜를 가르치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긴 여백은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저자와 필자는 파커 파머의 마음비추기 피정 진행자로서, 피정을 할 때면 깊은 침묵 가운데서 약 20여편을 함께 읽는다. 여기에 소개된 시들 가운데 많은 시들이 피정 중에 읽혀졌다. 피정 참가자들은 종교와는 상관없이 모였지만, 자신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고, 여기서 시는 경전처럼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보게 해주고,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며 마음의 고향으로 안내해주었다.
저자는 이 책 이전에 <영혼을 깨우는 책읽기>라는 책을 내었고, 본인이 내면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만났던 영적인 서적을 소개한 바 있다. 저자는 불교도인데 스스로를 수행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개된 시 뒤에 간단한 저자의 멘트들은 분석적인 해설 아닌 영적 통찰로서 그녀의 깊고 넓은 영적여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이슬람의 수피 루미, 인도 박티즘의 카비르, 기독교의 영성가 토마스 머튼, 현대 불교의 큰 스승인 틱낫한, 모두 네 사람이 각기 15편씩 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저자의 번역을 통해 머튼의 시를 소개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다. 머튼의 다른 많은 글들은 소개되었지만 시가 소개되기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중 세 편의 시를 소개한다.

저 홀로 부르는 노래
(Song for Nobody)

머튼

노오란 꽃이
(빛이고 영인)
홀로 노래하네
누구도 위하지 않는 노래를.

황금빛 영이
(빛이고 텅 빔인)
한마디 말없이 노래하네
저 홀로.

이 온화한 태양에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리
그의 깊고 검은 눈에서
누군가 깨어나리니.

(빛도 없고, 황금도 없고,
이름도 없고, 색깔도 없고
또한 생각도 없는
오 광대한 깨어남이여!)

황금빛 하늘이
저 홀로 노래하네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노래를.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야 하리

루미

1.
연못을 떠나본 적 없는 개구리에게
바다로 가는 건
모든 것을 거는 도박 같은 일

그는 포기해야만 하리
안전함과 익숙한 자기 세상
자신이 받아 온 인정들을

바다 개구리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할 뿐
“바다가 어떤지 설명할 길은 없다.
언젠가 거기로 데려다 줄 수는 있어도”

2.
눈에 보이는 세상이 뭔가 주기를
바란다면
그대는 한낱 일꾼일 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원한다면
그대는 자신의 진실을 살지 않는 것

두 바람 모두 어리석으나
그대가 잊었음은 용서받으리
그대 진정 원하는 건 사랑으로 들뜨는 기쁨이었음을

3.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야 하리
그대가 참된 인간이라면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를 떠나야 하리
반쪽의 진심으로는 성전에 닿을 수 없으니

신을 찾아 나섰으면서
그대는 너무도 오랫동안
남루한 선술집에 머뭇대고 있느니


모두를 원한다고 말하리라

틱낫한

그대 만일 얼마나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모두를 원한다고 말하리라.
이 아침, 그대와 나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됨의 놀라운 흐름으로
흘러들고 있다.

우리는 상상 想像의 작은 조각들,
자기를 찾고자 어둠 속에서
해탈의 미망 迷妄을 찾아 오랫동안
걸어 왔다.

오늘 아침, 내 형제가 먼 여행에서
돌아왔다.
눈물 그렁한 눈으로
제단 앞에 무릎 꿇는다.
그 영혼이 닻 내릴 기슭을 찾고 있다.
(나도 한때 품은 열망이었지.)
거기 무릎 꿇고 울게 하여라.
터지는 가슴으로 울게 하여라.
모든 눈물을 말리기에 충분할 만큼
수천 년 세월 거기 머물게 하여라.

어느 밤, 내가 돌아와
언덕 위 작은 오두막, 그의 피난처에 불을 놓으리.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파선 뒤에 남은 그의 유일한 뗏목마저 없애버리리.

그 영혼의 격한 번민 속에서
껍질이 부서지리라.
타오르는 오두막 불빛이
영광스런 그의 해탈을 증언하리라.
나는 불타는 집 곁에서
그를 기다리겠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내리겠지.
나는 거기 앉아
바라보겠다
새 존재가 된 그를.
내가 그의 손을 잡고서
얼마나 원하느냐고 물으면
그가 웃으면서
모두를 원한다고 대답하겠지,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