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2019

 

 

 

 

 

 

 

 

 

 

 

 

  오늘을 바라보며

 

은총의 볕뉘

 

 

 

 

 

 

 

 

 

 

 





김 준 수


목사
jjun1971@hanmail.net






 


툭툭. 피처럼 붉은 장미가 지던 어느 봄날. 부목사 노릇을 그만두었다. 무작정 쉬기로 하고 혼자만의 제주여행을 계획했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제주. 설렘 가득 안고 일정을 짜고 나니 유명 관광지와 맛집 위주다. 당시 재속재가 수도원 ‘신비와 저항’ 박총 목사의 ‘일상 영성’을 수강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의 “걸으면 해결 된다/ solvitur am - bulando”는 말에 꽂히고 말았다. “그래. 올레길을 걷자. 걸으며 지나온 삶을 톺아보고, 나아갈 여정을 내다보자.”

한 달 후 어느 아침. 제주 올레 1코스. 총 15.6km. 소요 시간은 대략 5시간. 이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서 올레 1코스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에 도착. 날은 잠포록했다. 속길로 들어간 시작점에는 동네 개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안내판을 보며 대충 코스를 가늠해 보고 스마트폰으로 올레 1코스 정보를 검색했다. 이런, 얼마 전 1코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 뜨는 것이었다. 잠시 두려움에 흔들렸으나 개의치 않고 1코스 시작.

처음부터 말미오름. 가풀막 진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가쁘다. 정상에 서니 성산일출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어 알오름. 땅을 보고 헐떡이며 오르는 숲길 끝에서 고개를 드니 주변 풍광이 확 바뀌며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가슴이 콱 막히는 아름다움.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경외와 신비.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들판 가득 임하신 하느님을 느낀다. 대지와 대기에 충만하게 임하신 주님. 여기는 호렙산이 아닌가. 풀과 나무, 구름과 공기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곳이 성전이고, 주님의 발등상이다. 내가 할 유일한 일은 모든 숨탄것들과 동일한 행위. 즉 예배였다.

꽃과 나무, 야생초는 존재 자체로 하느님을 예배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 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그렇다. 타고르가 노래했듯이 나무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나무는 그저 꽃을 피울 뿐이다. 꾸미거나 애쓰지 않고 존재 자체로 하느님을 노래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희로애락을 느끼고 발산하는 삶이 곧 예배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는 일상이 또한 그렇다. 비틀거리며 한 걸음 내딛는 몸부림이 가장 지순한 예배요, 순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례라고 한다. 선물로 주어진 현재에서 하느님의 동행을 느끼고 예배하는 삶이 순례다.『느긋하게 걸어라』를 쓴 조이스 럽 수녀는 말한다. “하느님은 현재의 순간 속에 나와 함께 계신다. 바로 이 현재라는 장 속에서 하느님은 나의 삶 속에 들어오시고 나를 부르신다. 내가 하느님과 삶에 전심으로 반응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현재 속에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교회 사역을 접고 보니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아니 마흔 이후 일상은 불안과 불만의 연속이었다. 주님의 임재보다는 부재를 경험하는 시간이 많았다.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하게 응시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올레길을 걸으며 땅별의 아름다운 대지와 푸새들과 숨탄것들 사이에서 그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 깃든 생명체를 톺아보니 모두가 주님의 은총을 알리는 찌였고, 주님의 형상이었다.

불안한 현실의 틈으로 스며드는 은총의 볕뉘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깔렸다. 은총 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배당과 기도원만이 아닌 세상으로 나가라. 숲과 강과 바다에, 잿빛 도시 길섶에 핀 야생초를 지긋이 보라. 거기 의지해 삶을 유지하는 모든 숨탄것들에게 시선을 돌리라. 그들을 보고 먹고 살아가는 인간들 곁에 서라. 그 모든 것이 은총의 수단이며 볕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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