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하늘나라의 열쇠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하늘나라는 저기 어딘가에 뚝 떨어져 있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 이 땅과 연결되어 있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는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행하는 매거나 푸는 일들 속에 들어있습니다. 나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내가 하는 행위들이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확신하지만, 맺고 푸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런 말뿐인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한없는 구원의 은총을 싸구려 구원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는 요원할 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가 지적한 것을 보면, 이천년 전에도 지금처럼 입으로만 하늘나라에 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매거나 푸는 이 일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서울 사랑제일교회와 8·15 광화문 집회 발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극단적, 정치적, 탐욕적, 비상식적 행태는 극단주의자들의 광기를 보여줍니다. 그들에게는 촛불혁명과 6.15선거를 통해 대다수 국민들이 인정한 현 문재인 정부는 무너뜨려야 할 적이 되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열광적 정치적 행태는 방역 모범국으로 칭찬받던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라면, 아마 성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천만한 행위들을 신앙이라고 받아들이며 그들을 이끄는 전광훈을 메시야처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났던 2천 년 전에도 많은 메시야 운동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메시야 운동은 억압으로부터 해방과 땅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무력적, 폭력적 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행위에 반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한 운동을 하셨습니다. 정치적 메시야 운동이 아닌 전혀 차원이 다른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열광적 극단적 정치행위는 결코 복음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 탐욕일 뿐입니다. 그들의 공격적 폭력적 행위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막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이런 행태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상황만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행태 때문에 앞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곳은 한국개신교회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독일에 있을 때,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령운동에 대해 토론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독일 목회자가 독일국가교회 EKD는 게르마니즘 Germanism 의 부흥을 외치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를 메시야라고 생각했고, 국민들의 열광적 지지를 일종의 성령운동으로 받아들였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패전 후에 그에 대한 처절한 반성으로 독일교회는 성령운동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독일교회가 그렇게 냉철한 이성적 교회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전광훈은 8·15집회에서 자신이 본회퍼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처럼 극단적 극우주의에 빠져있는 그가 히틀러와 대척점에 섰던 본회퍼를 자신과 동일시하다니, 이런 무지함에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들의 행태와 그들을 부추기는 세력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주님께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향해 길을 보여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김경재 교수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 총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허물고, 세워야 하는가?”물으며 “한국 사회를 이념적으로 양분시키고, 갈등관계로 몰아갔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성장주도경제와 분배중시경제 등 모든 형태의 이원론적 도식에 사로잡힌 갈등과 투쟁이 나라의 주권자인 시민의 생명과는 관계없는 논쟁이었음을 드러냈다”며 “생명을 위해 그동안 이념 대립적 양편의 정책이 얼마든지 패러다임 융합을 통해 서로 보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념과 국가를 위해 사람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해 그것들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기독일보, 6월 20일 기사에서)

분열과 대결에서 일치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이 패러다임 전환을 주님은 하늘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이 땅에서 매거나 풀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보지 말고, 하늘나라를 위한 형제자매로, 동지로,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아니 그가 원수라 할지라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십니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은총을 베푸시는 하늘 아버지처럼 서로가 다를지라도 먼저 받아들이고 은혜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반복적으로 해왔던 증오와 원망과 분노, 그리고 대결과 전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네가 바꾸면 나도 바꿀게’ 방식은 답이 아닙니다. 새로운 영성의 세기에 맞는 답은, ‘먼저 내가 바꿀게’ 방식입니다. 이것은 너와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와 한없는 믿음에 기초합니다.

영성의 성숙과 의식의 진화를 통한 존재의 변화, 애벌레가 고치가 되어 죽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듯, 내가 죽어 부활의 존재로 태어나는 길을, 이제 대한민국은 열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론이 아닙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왔던 수많은 고난의 삶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우리는 의식의 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하늘나라를 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 마음에서부터 어둠을 몰아내고 따뜻함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