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보는 것’이기보다는 ‘듣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삼복더위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할 즈음 연변에서 그 말을 실감했습니다. 사회 영도/지도자들을 위한 에니어그램 인성 세미나를 주관하는 닷새 동안,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자기의 성격 유형과 격정을 발견하고 거기에 따른 생활 습성과 패턴을 발견한 참가자들은 그곳 표현 방식대로 ‘격동’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큰 울림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런 열화 같은 반응이 나온 배경이 의미심장합니다.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당성 黨性과 공성 共性을 강조하는 교육은 받았지만, 대조적으로 개성이나 자아 또는 정체성에 대한 교육은 그만큼 소홀히 해 왔기 때문에, 자기 발견의 길을 가리켜 보이는 에니어그램 인성교육이 주는 의미와 충격이 그만큼 심대했던 것입니다.

시장경제 체제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변은 물론 중국 전체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와 무한경쟁의 새로운 트렌드에 휩쓸려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중년층에서는 부부가, 혹은 부인 혼자 한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서 할머니가 가정을 돌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만 놔두고 부모가 집을 비운 가정이 많아서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청년층들도 보다 나은 삶을 찾아 한국이나 중국 남방의 대도시를 향해 줄을 이어 떠나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조선족이나 한국인이 경영하는 업소에서조차 한국말을 사용하는 층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한국말을 잘 모르는 한족 젊은이들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치주의 조선족 인구가 최근 들어 줄잡아 30% 정도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적 격변을 배경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영도자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은 에니어그램 교육을 통해 사회적 비전은 물론 장차 자신들이 할 일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사회변동의 큰 물결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해왔는데,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정리하면서 사회를 향해 발언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한 것 같다는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퇴직한 장년층 이상은 건장한데도 일이 없어 놀며 소일해 왔던 차에, 새로운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는 생각도 하고 느낌도 있었으나 사회적 이슈로 인식되지 못했던 일들이 정리되면서 에니어그램 교육을 통해 ‘사회문제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던 그들의 자긍심이었습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가운데서 가장 용맹스럽고 깨끗하고 우수한 민족으로 우대받던 그들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각종 해방 전선에서 선봉에 섰던 그들이었지만, 우대는커녕 조선족자치주가 위축될 위기마저 느끼고 있던 차에 새로운 비전을 듣게 된 것입니다.

연변조선족 사회의 영도들은 사회 개변/변화를 위하여 세상이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작게는 거리질서와 교통질서를 바로 세우고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며 관리하는 일을 시작하겠다는 결단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본디 중국 안에서 청결하기로 이름난 조선족자치주의 면모를 일신하여 연길시부터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자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그분들은 이런 경험과 지혜를 모아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북조선의 인민들에게 인성교육의 물꼬를 트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이란 중대한 이슈를 놓고 볼 때, 인성 교육이야말로 선결조건이라 할 것입니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자기의 본모습을 보게 된 조선족들이, 같은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온 입장에서 북조선의 에니어그램 인성교육에 나선다면, 그 효과가 심대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에니어그램 교육을 통해 자기 안의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보면서 어떻게 하면 밝음을 더욱 신장할 것인지 희망의 씨앗을 움켜쥐게 된 그분들이 북조선의 인민들에게, 나아가서는 중국 안의 다른 소수민족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지구촌 구석구석에, 날로 날로 그 밝음의 씨앗을 퍼뜨려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