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쪽 끝 도시라 할 수 있는 쌍뜨 뻬쩨르부르그까지 8박9일을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우리의 로망인 자작나무는 더 이상 로망일 수 없게 빼곡하게 진열되어있습니다. 산이 드물어 등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정도의 평원으로 이어지는 벌판은 늪지대가 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건강함을 갖게 하는 지역입니다. 왜 개발을 하지 않냐는 질문에 러시아는 세계의 마지막 청정지역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놔두고 있으니 자연 그대로를 즐기라고 답합니다.

사람이 먼저인지 땅이 먼저인지 모르게 사람과 땅은 닮아 있습니다. 자작나무처럼 키가 크고 하얀 사람들, 바람이 부는 대로 나지막이 자작자작 소리 내는 조용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잇속을 차리지 않는 사람들, 주어진 환경과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원망이나 불평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무엇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가꾸는 꽃밭은 물론이고 24시간 열려있는 꽃집이 500 미터 간격으로 있다는 것으로 그들의 정서와 아픔과 소망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로 유명한 푸쉬킨 Pushkin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푸쉬킨의 글을 통해 투사되는 세상에 대한 저항과, 꿈꾸는 사랑, 현실에서 이루지도 피우지도 못하는 소망을 꽃 한 송이에 담아 자신들을 표현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건물은 어느 동네마다 중앙에 아름다운 색채를 띄우며 빛나고 있고 입구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라고 통일적으로 쓰여 있습니다.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강조하기에 정교회 건물은 아름답고 화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침울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기에 기쁘고 즐거운 삶이 되어야 하는….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기에 모든 복잡한 감정을 한 송이 꽃에 담아내려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그들의 언어 속에 그들의 신앙이 보입니다.

‘Спасибо (스빠시바,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는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감사합니다’에 대한 대답은 보통 ‘별말씀을’이라고도 하지만 자주 사용하는 대답 중에는 ‘Слава Богу (슬라바 보구, 하나님께 영광을!)’입니다.

일요일이란 ‘Воскресенье (보스끄리시니예)’는 부활을 의미하는 ‘Воскрешение (보스끄리쉐니예)’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일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우리도 죽었다가 매주일 부활하자는 신앙의 고백에서 나온 단어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 많은 예를 들 수는 없지만 그들의 생활과 삶의 저변에는 신앙이 밑받침 되어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한국과 한국 사람을 좋아하고 반겨주는 그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정이 흐릅니다.

까레이스키로 불리던 우리의 동포 고려인들은 스탈린 시절인 1937년 추운겨울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인 우즈베키스탄, 타직스탄, 카작스탄, 키르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되었으나, 1990년 구소련 舊蘇聯이 해체될 때 속해 있던 공화국들을 독립시키며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중앙아시아에 있던 적지 않은 수의 고려인들은 조상이 있던 땅 연해주를 택하여 다시 이주하여 들어왔습니다.

선조로부터 5-6대가 지난 지금, 우리말을 하는 고려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한국어 배우려는 젊은 고려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2002년부터 중국에서 사역해왔습니다만, 작년 6월에 18년간의 중국사역을 잠시 접어두고 북한과 국경을 이루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데 발판이 될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을 위한 재가복지를 시작했고, 러시아의 집시와 노숙자들을 케어하는 일을 도우면서 쉼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쉼이 필요한 누구라도 와서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러시아! 사랑이 필요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