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한국 개신교 전체가 북적거렸다. 심지어 가톨릭에서조차 이 날을 기념하며 개신교의 행사에 참여하여 루터의 정신을 배우기도 했다. 서구 근대의 문을 연 주역이 된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유형의 원형이 된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종교의 영역을 넘어 세계사적 전환을 이룬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유명한 ‘95개조 테제’를 제출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불을 붙였다. 점화된 개혁의 불꽃은 전 독일을 뒤덮었고 얼마 되지 않아 유럽 전체를 휩쓸었다. 마침내 1521년에 황제 칼 5세는 보름스 제국의회를 열고, 루터에게 그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그는 대답했다. “성서의 증언이나 또는 명백한 이성의 근거에 의해서 본인이 틀리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저로서는 취소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본인은 회의나 교황의 결정이 오류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위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전율을 느끼며, 이러한 양심을 거스르면서 행동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못하며 또한 안전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이어서 그는 유명한 ‘나 여기에 서 있고 다른 방도는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에 서 있다’라는 말은 물론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황제의 권력에도 교황의 권위에도 좌우되지 않는 ‘양심’이라는 법정에 서 있음을 의미했다. 그가 말하는 ‘양심’은 결코 인간의 생래적 生來的인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의 말씀이라는 초월적 권위에 결부된 양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직 한 사람으로도 만인에게 항의하고 시대의 정신에 저항하며 굳게 설 수 있는 것이었다. 신의 말씀에 근거한 양심의 권위와 항의가 밀접히 결합된 루터의 태도는 이후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의 원형이 되었다.

‘프로테스탄트’란 말은 1529년 제 2회 슈파이어 제국회의에서 복음주의파 제후들과 도시의 대표들이 표명한 ‘프로테스타치오 protes- tatio’에서 유래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경우에도 복음에 근거한 양심과 항의는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다. ‘프로테스타치오’는 “우리들의 양심 때문에 …… 성스러운 신의 말씀에 의해 우리들의 주님이신 신에게 의무와 책임을 짊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지난 날 루터처럼 ‘우리들은 여기에 서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마지막 지점에 서 있었다. 이들의 항의를 지탱하는 부동의 기반은 신의 말씀에 결합된 양심의 권위였던 것이다. 이후 항의자들은 ‘프로테스탄트’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1649년 밀턴에 의해 마침내‘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추상 개념이 도출되었던 것이다.

루터에 의해 대표되는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은 스스로를 자유로운 자기 책임적 인격으로 이해한다. 그는 자기의 결단으로 신의 의지에 응답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신앙에 있어서만 의롭다고 인정된다는 프로테스탄트는 교회적 보호로부터 해방되어 자립적 주체로서 산다. 신의 말씀에만 결합되어 있는 양심의 자유가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의 본질적 표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종교개혁의 프로테스탄트는 교회 제도와 전통의 요구에 대해 행해지고 있었다. 교회가 전체주의적 종교 감독자가 되고자 하는 유혹에 대해 반복해서 교회의 자기비판적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신앙적 원리는 세속적 제도나 전통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세속적 제도나 전통 역시 복음에서 도출되는 신앙적 통찰에 근거해 비판되고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권위 신앙은 원래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의 정신 태도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지배에 대해 저항한 ‘바르멘 선언(1934)’은 ‘프로테스타치오’의 현재적 재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의 말씀에 결합된 양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는 신앙 고백에 의거해 국가의 절대화에 항의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기술 관료적인 전체주의적 비인간화의 체제에서 내면적 자유를 위한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의 증언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가지는 현대적 사정거리는 결코 짧지 않은 것이다.

한편 1962년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개신교는 가톨릭에 의해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를 높이 평가하는 개혁, 평신도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각시키는 개혁, 세속 사회에 대한 적극적 대응으로서의 개혁을 표방했다. 이 점에서 ‘프로테스탄트적 원리’는 이제 개신교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 Hans Kung은 “루터가 주장한 정당한 요구의 많은 부분은 이번 제 2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생각된다”고 하며, “개신교는 이제는 보다 더 자기 비판적인 이해와 개혁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효과 있게 맞서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개신교의 자기 개혁을 촉구했다. 과연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을 오늘날 개신교는 가지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