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11/2012

 

 

 

 

 

 

 

 

 

 

 

 

  현장의 소리

 

대안을 향하여 : 벼리가 ‘소도’를 넘어 ‘아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1)

 

  벼리학교 이야기(4)

 

 

 

 

 

 

 

 

 





이 용 우

안양YMCA벼리학교
baramgr@hanmail.net






 


1. 소도 蘇塗에 대해서

소도는 삼한시대에 제의를 지내던 곳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魏志東夷傳> <한조 韓條> 에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 사람을 천군 天君이라 한다. 또 이들 모든 나라에 각기 별읍 別邑이 있어 이를 소도라 한다. 긴 장대에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귀신을 섬긴다. 모든 도망자가 이곳에 이르면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 일쑤였다. 소도를 세우는 뜻은 부도 浮屠와 같은 점이 있으나 그 하는 일에 선악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밖에 〈후한서〉〈진서〉 등에 비슷한 기록이 보입니다. ‘소도는 제의가 행해지는 신성지역이며 별읍이 바로 성역이 된다.’ 한편 소도는 입목 立木·간목 竿木을 나타내는 ‘솟대’ · ‘솔대’에서 온 말로 읍락의 원시 경계표로서, 신체 혹은 제단으로 건립되는 대목 大木의 명칭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나아가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일어나는 신구 新舊 양 문화의 갈등을 완화·조절하는 제도적 장치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도는 처음에는 수목 樹木 숭배사상에서 대목 그 자체를 의미하던 것이 후에 천신이 내려오는 계단 및 사는 곳 또는 신성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점차 개념이 확대·변천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2. 아쉬람 Ashram에 대해서

아쉬람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행자들이 사는 초막, 혹은 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합니다.

둘째는 ‘아쉬라마’로서 인생의 일정한 단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고대 베다시대의 인도인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고 그에 맞게 살아갔습니다. 그 첫 단계는 일정 기간 동안 스승의 아쉬람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기간입니다. 둘째 단계는 스승의 곁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현실생활에 충실합니다.

셋째 단계는 가정생활을 충실히 마친 뒤 숲으로 떠나 수행을 하며 지내는 기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완전한 출가자로서 수행과 탁발로 생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아쉬람은 전자에서 말한 공동체 의미가 강하며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집, 혹은 그 수행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그곳을 방문하여 그곳에 사는 수행자들의 지침에 따라 명상 수행도 하고 마음도 쉬었다 가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본다면 절이나 교회 기도원 선원 수도원 등이 아쉬람의 기능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느 곳도 아쉬람 본래의 순기능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없다 하겠습니다. 아쉬람의 참된 의미는 건물이 아니라 ‘영성 교제가 있는 모임’이자 “자연과 어울리며 마음을 쉬었다 가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갑자기 왠 ‘소도’며 ‘아쉬람’이냐구요? 네, 벼리가 소도가 되고 아쉬람이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아이들도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휴 休 -” 하며 피할 수 있는 피난처요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소도의 경지를 넘어 아쉬람으로 진화하는 꿈을 벼리 모두가 함께 꾸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에서 입니다.

4. 어떤 이는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구도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의 힘이자 한계인 능률과 경쟁의 진흙탕 속에 우리 아이들이 던져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면서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그 아이들의 본성을 맑히기 위해서 자신들의 영성을 성장시키려는 선생님들과 함께 선재의 길을 걷는 아이들이 심신을 수련하는 수도승 Schola들이 걷는 구도의 길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투쟁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일상 日常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들이 그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압하고 있는 온갖 유형무형의 폭력들과 자신들의 삶으로 저항하는 보헤미안들의 개별적이고 공동체적인 투쟁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현장의 소리

 

‘길거리에서 부른다’(잠언 1:20-30)

 

  성서연대 (11)

 

 

 

 

 

 

 

 

 





김 종 우

목사
서탄교회
kjw2125@hanmail.net






 


김기섭: “노인의 영광은 백발이다.”(잠언 20:29)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백발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육체의 호칭이 아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발을 땅에 디디고 산다. 백발은 하늘과 땅 중간에서 삶의 한 순환을 의롭게 걷는 이에게 붙이는 존경스러운 호칭이다(잠언 16:31). 그런데 백발의 사람, 의와 동행하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지혜이다(잠언 10:31). 영혼을 하얗게 만들기 위해 우리 각자가 경험한 지혜의 음성을 나누어 보자.

우철영: 살아가며 늘 지혜의 소리 곧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모양 이 꼴은 아니겠다 싶은 때가 많다. 지금보다 더욱 아름답게, 더욱 인간답게, 더욱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답게 살 것이다. 시시때때로 지혜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늘 뜻을 받들어 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관심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 낮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김기섭: 동의한다. 지혜를 미워하는 이유가 바로 내 욕심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표현은 이상하지만, 집착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있다. 왜냐하면 참신하고 옳은 생각은 많지만 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집착하는 몸이란 실천하지 않는 몸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성규: 갈라디아서에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현재의 나는 몸을 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고백 했다. 자신을 내어 주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몸도 마음도 내어 놓으며 비우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고 참된 낮아짐이다.

김명신: 지혜는 추상적인 속성과 구체적인 속성이 있다. 보통 지혜를 추상적으로 하늘의 의와 관련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성경은 생활 속의 구체적인 지혜를 말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 말씀은 생활 속의 구체적인 지혜에 더 중심을 두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생활의 지혜도 원천은 하나님으로 생각한다.

이경남: 나는 지혜의 음성을 많이 듣는다. 우리 교회 청년이 가끔 와서 나에게 와서 묻는다. “키보드 어디 있어요? 마이크 어디 있나요?” 그 청년의 이름이 지혜다. 하하하....... 오늘 말씀대로 지혜가 늘 우리 주변에서 소리 지른다. 지혜의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은 차분해지고 일어난 사태들도 잘 파악한다. 그러나 욕망에 집착하거나 즉흥적이면 지혜는 문을 닫아건다. 지혜가 문을 닫아거는 표현이 이사야서 6장에 있다.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격언에 구사 九思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신앙인은 삶의 한 가운데서 아홉 번 생각하며, 자신을 살피고 하늘의 뜻을 살펴야 한다.

우철영: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자의적으로 들을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지혜의 음성으로 착각해서 제멋대로 주장한다. 지혜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욕망을 투영한 거짓 지혜를 고집할 때, 하나님은 참 답답하실 것이고, 그 때문에 지혜가 문을 닫아건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련함을 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경험을 내려놓는 낮은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중요하다.

최성규: 집착과 구사라는 말을 들으니 스티븐 코비 박사의 성공하는 습관이 생각난다. 신앙인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일보 후퇴하여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선인들의 생활을 생각하고 둘째는 예수님 생각이다. 그래서 공통점을 포착하면 2보 전진을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은 행동이 먼저인 경우도 있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아홉 번 생각해야 할 때 아홉 번 생각하고, 한 번 생각해야 할 때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이 둘을 분별하는 것도 지혜다.

우철영: 나는 ‘호 불호’를 잘 표현하지 않고, 과감할 때 과감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구사가 아니라 십오사 정도 한다.

윤병선: 머리를 염색해서 잘 모르겠지만, 내 머리가 가장 흴 것이다. 하하. 인생을 사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월남 참전 중에 총알이 빗발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 목회를 시작한 후, 마음이 참담하고 서글플 때도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 지혜의 음성은 몸이 서있거나 무릎을 꿇는 것과는 관계없이 찾아왔다. 하나님은 무소부재의 영이시다. 특정한 장소에서 육신의 몸을 꿇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소와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마음이 찢어질 때, 지혜의 음성이 찾아온다. 날카로운 낫이 곡식을 잘 베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심령을 갈고 닦을 때 하늘의 지혜에 민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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