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9/2012

 

 

 

 

 

 

 

 

 

 

 

 

  현장의 소리

 

벼리학교의 흐름은 이렇습니다(1)

 

  벼리학교 이야기(2)

 

 

 

 

 

 

 

 

 





이 용 우

안양YMCA벼리학교
baramgr@hanmail.net






 


1. 저의 고향은 집 앞으로 남한강이 흐르는 강변 마을입니다. 어릴 적, 소를 키우는 것이 저의 밥값이라 여름이면 강변에 소를 묶어 놓고 소꼴을 베고 온 몸에 젖은 땀도 식힐 겸 해질녘까지 강에서 놀았고, 겨울이면 밤새 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낮에는 큰 썰매를 만들어 강 건너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강변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맑은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모두 제 맛이 다릅니다.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강은 안개가 자욱이 낀 아침의 강과 비 오는 날의 강 그리고 황혼녘의 강입니다. 그런 날들,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남한강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강물의 흐름도 다양합니다. 마당바위가 있는 곳은 깊고 편편한 곳이라 물이 잔잔히 흐르고, 귀신바위가 있는 곳은 경사가 급하고 강폭이 좁아 물이 급하고 요란하게 흐르며, 처녀바위가 있는 곳은 물이 얕아 흐르는 물에 재잘거리며 자갈 구르는 소리를 냅니다.

요즈음 저는 벼리라는 강의 강변마을에 삽니다. 이 강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을 2년 보내면서 벼리의 강변에 소를 묶어 놓고 수영도 하고 강 건너에 가서 나무를 베기도 하고 안개 긴 아침 강, 비 오는 날 강 그리고 황혼녘의 벼리라는 강을 살았습니다. 2년을 흘러 본 벼리라는 강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2. 무엇보다도 제게 감동을 준 것은 벼리선생님들의 아이 사랑이었습니다. 아이들 만남을 거룩한 그 무엇인가를 모시듯 만나고 그 무엇과 영적인 교류를 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이 사랑만 받아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갖고 있는 사랑의 정체가 고스란히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랄까요? 그간 저의 사랑은 제 속의 사랑이었고 관념적인 사랑이었지 정성을 다하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정성을 다해서 아이들과 나눔을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3. 감동 이후에 경외감을 준 것은 벼리의 교육과정이었습니다. 도덕경에 ‘코끼리가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순간순간 호흡을 조절하고 調息 몸을 조절하고 調身 마음을 조절 調心하면서 사는 도인의 걸음을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벼리의 교육이념과 교육원칙이 그러했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마련된 교육과정과 벼리문화들은 촘촘한 장치들까지 갖추고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속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生命體였습니다.


4. 이 생명체, 벼리 교육과정의 물 흐름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깊은 물길 조용한 흐름인 ‘마음내기’입니다. 상황이 생길 때마다 사람마다 사리를 판단하는 판단기준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감각기관인 ‘느낌’으로 판단을 내리고, 어떤 이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판단을 내리고, 또 어떤 이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느낌과 생각과 마음이 하나인 사람은 도인의 경지이겠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주로 합리적인 생각으로 판단들을 내려왔습니다. ‘습 習’이란 말 그대로 ‘습 習’이어서 나이가 먹을수록 그동안 습 習이 된 이성적 기준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합리적 판단으로 대책을 자동출력을 합니다.
하지만 벼리의 아이들은 머리로 보고 머리로 판단 내리기에 앞서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판단하는 훈련을 합니다. 그렇게 친구 나무를 대하고 학의천을 대하고 개구리를 대하고 친구를 대하는 경험을 교육과정 구석구석에 다양한 장치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둠을 만들어 누구는 쌀을 씻고 누구는 조리를 받쳐주고 누구와 누가 조심스레 발맞추어 물통을 나르는 일련의 작업은 마음을 내는 훈련의 하나입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좋아하는 ‘따스한 마음’을 ‘내는’ 반복된 훈련이 벼리교육과정의 출발점입니다.
두 번째, 굽이치고 재잘거림의 흐름인 배움의 영역은 ‘최대한 즐거움, 최소한 긍정적인 경험’입니다. 기본적으로 벼리의 배움에 대한 개념은 ‘일하는 마음과 노는 마음과 공부하는 마음이 똑같은’ ‘즐거움’입니다. 말과 글도, 셈과 꼴도, 춤 수업도, 흙 살림도, 김장하기도, 그리고 수많은 행사들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즐거움’으로 시작해서 ‘긍정적인 체험’으로 마침을 하고자 합니다.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도록 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최소화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지점까지만 배움을 합니다. 이것이 그 아이의 본성을 밝히고 맑히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현장의 소리

 

“기억, 실천, 전승”

 

  성서연대 (9)

 

 

 

 

 

 

 

 

 





김 종 우

목사
서탄교회
kjw2125@hanmail.net






 


날씨가 너무 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열대야로 잠 못 이룬다. 늦은 밤까지 공원에서 지내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바닷가로 가거나 산을 오르며 나름대로 더위에서 벗어나고 있다. 윤병선 목사님께서 고기와 맛난 음료, 상큼한 야채와 맛깔난 장 등,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시고 우리를 초대하셨다. 오늘 말씀(출애굽기 12:1-4)을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한 예언적 행동으로 생각한다. 나눔과 사랑, 성경과 교제를 통해 더위를 피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한다. 출애굽 전승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가장 오래된 전승 가운데 하나이다. 출애굽 전승의 일부를 음미하면서, 나눔과 축제의 “출 더위기(출애굽기 대신)”를 써보자.

김명신: 아이가 태어날 때 운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해석하는 양극단이 있다. 하나는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꼬!’하며 소리 질러 운다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너무 기쁘고 흥미진진해서 운다고 해석한다. 출애굽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이 성경에 나타난다. 광야에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출애굽을 시켰다는 입장과 축복의 땅에서 자유를 누리라고 출애굽을 시켰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개인의 자유이지만, 오늘 말씀으로 볼 때, 진정한 출애굽은 하나님의 인도를 기억하며 전하는 가운데 발생한다는 것을 본다.

윤병선: 오늘 저희 교회에 오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음식을 좀 장만했는데, 오늘 구절과 일치하는 면이 있어서 흥미롭다. 한 가족의 식구가 적어서, 음식이 남으면 이웃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라는 구절이 오늘 성경에 있다. 나는 이것을 첫째, 처지는 불문하고 가능한 한도에서 자신의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라. 둘째, 자신의 것은 무엇이든지 의미가 있으니, 함부로 소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또 “그 어느 것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분들 오늘 음식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시고 가시라.(모두 웃음)

윤장한: 윤 목사님께서 오늘 여러 번 우리를 “출더위” 시키신다. 탈출과 유사한 탈거 脫去라는 말이 있다. 벗어버리고 떠난다는 의미이다. 현대인은 소유와 소비에 익숙하다. “비싼 것을 많이 갖고, 명품을 써라”가 우리의 표어다. 이것들이 파라오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억압한다. 물론 사회구조가 소유와 소비를 재료삼아 건축되고, 우리가 그 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들에서 탈거하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소유와 소비를 삼가는 이가 복이 있나니, 그가 하나님께 가까운 것이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철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월절로 기억하고 전하라고 하신다. 개인 신앙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인 공동체 신앙으로 유월절을 격상시키신다. 현대인의 특징인 개인주의와 일치하여, 많은 교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개인차원에서만 머물게 한다. 독일 교회가 히틀러의 제도적 불의에 눈감고 추인해 준 것처럼, 우리는 국가적 불의와 사회적 불의를 눈감아주고 추인한다.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김종우: 잘 아시다시피, 옛 예언자들은 특이한 행동을 통해, 지난 행위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했다. 오늘 말씀에서 이러한 예언자들의 행동과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급히 탈출하는 사람처럼 특이하고 생생한 모습으로 음식을 먹으라고 하신다. 한마디로 제도적으로 불의한 권력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요청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이란 제도적으로 불의한 권력으로 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이다.

김기섭: 예수님의 십자가를 로마 제국의 폭압의 결과로 해석하고, 부활을 제국의 폭압으로부터의 탈출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현대의 로마는 미국을 중심으로 강대국들이다. 아마도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도 이제는 강대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커다란 책임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하게 되었으니, 국내의 보편적 복지와 세계인의 복지에 더 충실해야 할 때가 되었다.

라광진: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님의 해방하시는 능력을 공동체 차원에서 기억하고, 공동체 차원의 생활로 만들고, 공동체 차원으로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 신앙이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생명의 원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따른다. 주님은 옛 것에서 탈출, 탈거하는 공동체를 위해서 오셨다. 그 공동체는 경쟁적 공동체가 아니가, 서로를 지원하는 지원 공동체, 서로를 격려하는 격려 공동체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생활로 만들고 후손에게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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