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10/2011

 

 

 

 

 

 

 

 

 

 

 

 

  현장의 소리

 

선생님, 나도 여친이랑 영화보고 싶어요

 

  교 육(2)

 

 

 

 

 

 

 

 

 





이정화

소장
구로언어학습발달연구소
traum1203@hanmail.net






 


지역아동센터의 여름방학 중에는 다른 때와 달리 사회복지 실습생이 여러 명 와서 실습을 한다. 주 1회 오거나 일주일 내내 와서 한 달을 꽉 채워 실습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예쁘고 멋진 남녀 학생들이다. 방학이라 이른 아침부터 중고생 자원봉사자, 실습생과 아이들로 센터는 북적인다. 에어컨을 켜고 벽에 걸린 선풍기를 함께 돌려야 한여름의 무더위를 조금은 피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도 늘 보던 선생님보다는 예쁘고 친절한 젊은 선생님 옆에서 공부하겠다고 자리 쟁탈전을 벌인다.

요즘 우리 경수씨는 사회복지 실습생들 때문에 하루 종일 신이 났다. 매일 투덜거리고, 졸고, 가끔은 엎드려서 잠까지 청하는 경수씨가 한 달 동안 완전히 대변신을 했다. 친절한 말투, 민첩한 행동, 솔선수범해서 뭐든지 자신이 하겠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평소 싫어하던 화장실 청소까지 스스로 한다. 방학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 컴퓨터와 TV시청으로 다음 날 하루가 피곤했던 경수씨다. 어릴 적 뇌수술로 지금까지 경기를 해서 약을 복용하는 경수씨에게 전자파가 나오는 전자기기는 모두 해롭다. 전자기기 사용시간을 줄이고 운동과 정확한 약복용으로 경기를 줄여가야 한다. 그런데 경수씨는 컴퓨터와 TV시청 줄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생님, 밤이 너무 길어요. 저도 여친이랑 영화보고 싶어요. 저 33살 되면 결혼할 수 있을까요? 제가 컴퓨터랑 TV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경수씨의 말에 공감이 가지만 선생 입장에서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럴 땐 가슴이 내려앉는다.

오늘은 사회복지 실습생들과 치킨집에 가서 맥주 한 잔씩 하기로 했다며 아침부터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 저는 술은 안 되지요? 치킨만 먹으려구요.”라고 한다. 많이는 안 되지만 맥주 몇 모금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하자 금방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내가 장애인의 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성프란치스꼬 여성장애인 복지관 안에 있던 성폭력 피해자 쉼터인 헬렌의 집 친구들을 교육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모두 지적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여성장애인인데 모두 성폭피해자들이다. 헬렌의 집은 수녀님, 사회복지사, 여성장애인 15명이 공동생활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사는 생활시설이다. 지금은 이전과 다른 형태로 운영 중이고 교육과 재활을 받은 후에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있다. 겉으로는 이들의 상처가 다 아물어서 일상의 삶을 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안고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2003년부터 장애인 성교육, 부모교육과 교사교육을 하면서 나는 우리의 교육 현실 여건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다소 지쳐 있었다. 2007년에 마침 남편이 안식년이라 독일 베를린에서 1년을 지내면서 장애인 성교육과 관련된 공부를 좀 더 깊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때 독일인들이 장애인의 성에 대해 우리와 너무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여러 번 놀랐다. 구동독지역인 Merseburg대학에서 열린 교사 연수를 위한 세미나에서 장애인의 성적인 권리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이들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대안은 나를 당혹스럽게 까지 했다. 매춘이 합법화되어 있는 독일에서 장애인을 상대로 서비스하는 여성을 ‘매춘녀’라고 했다가 ‘성동반자’라고 수정해 주는 강사를 보면서, 서비스 비용이 비싸니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참가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애인의 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경수씨, 금요일에 우리 선생님들이랑 영화 보러 갈까요?”

“어휴, 선생님, 제가 무슨 재미로 선생님들이랑 영화를 보러가겠어요. 됐어요.” 나는 경수씨에게 멋지게 거절당했다.

 

 

 

 

 

 

 

 

 



 

  현장의 소리

 

작음의 강함은 성서의 진술이다

 

  성서연대 (2)

 

 

 

 

 

 

 

 

 





김 종 우

목사
서탄교회
kjw2125@hanmail.net






 



세속사의 흐름의 중심에는 힘(권력)이 있고 그 힘에 따라 역사는 이루어져간다. 세속사에 있어서 강자가 약자를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그 힘을 추구한다. 대개의 경우 그러한 측면에서 역사의 서술은 강자와 승리자의 입장의 기록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구속사, 성서의 세계에서는 역설적 힘의 관계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물리적 큰 힘이 작은 힘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것이다. 세속사와는 달리 성서의 진술은 약자의 강자를 이기는 역설의 진술이다.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작은 물맷돌은 창과 칼의 힘을 격파하였다. 요셉은 그 보다 강한 형들의 힘과 세상의 불리한 환경에서 승리하였고 기드온은 가나안 정복시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 초대교회의 신앙의 힘은 로마제국의 강대함을 꺼꾸러뜨렸다.

작음의 강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작은 것이 어떻게 큰 것을 이길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작음은 만물의 본질이며 그렇기에 때로 ‘하나님 앞에서만 그 작음은 큰 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손의 붙들림에 의해서 모든 본래적 작음은 비로소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로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며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강한 자로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목회하는 곳은 평택의 한 농촌마을인데 역시 소형교회이다. 우리 지역에는 비슷한 소형 교회들이 많은데 소형교회로서의 한계를 공감하는 12교회가 모여 월간 “햇순”을 교재로 성경공부를 하며 소형교회의 목회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하여 고심하며 기도하고 있다.

소형교회로서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보다 적은 예산에서 오는 활동의 제한들이다. 개체교회 위주의 전형적 한국목회에 있어서 적은 예산과 그로 인한 대외적 활동의 어쩔 수 없는 제약은 불안감과 자신감의 결여를 동반해 목회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 위축과 스스로 느끼는 왜소함은 소형교회의 목회자들의 목회의 부정적결과를 가져오기 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 지역 성서공동체는 일주일에 한번 말씀공부를 통하여 작은교회로서의 자신감을 얻고 섬김과 봉사의 문제를 연대해서 함께 꾸려 나가고 있다.

금요철야기도회는 한 달에 한번씩 회원교회를 순회하며 연합하여 드리는데 함께하는 찬양과 기도의 시간은 소형교회의 연대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된다. 지난달에는 찬양예술신학교 찬양단을 초청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또한 1년에 3-4회 지역 내에 독거노인이나 청소년가장 등 불우한 이웃을 초대해 섬김의 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봉사와 섬김의 자리는 각 개체교회 교우들에게도 교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작지만 우리도 섬겨야 하고 나누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당위성을 배우는 것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여름행사나 겨울 수련회같이 작은 개체교회가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일들을 연합해서 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형교회들의 믿음과 행사의 연대는 소형교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인 것이다. 단순히 규모에 있어서 대형교회의 반대적 의미에서 소형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작은교회”가 되는 것이다.

작은교회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단순한 연대만 가지고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때 목회자가 지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작은교회도 당연히 성장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함께 성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단순한 행사의 연대를 넘어서서 가능하다면 개체교회들의 교회 대 교회의 연합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목회자 간에 역할분담과 기술적인 문제들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면 “작은교회”의 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작은교회로서 긍정적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땅의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세상과 싸우는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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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교회는 대형교회의 대비적 의미로 작은교회는 본래 성경이 의미하는 주님만 의지하는 작음의 의미로 사용하였음(햇순 185호 p.32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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