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학교는 올 해 제2회 졸업생 12명을 배출했습니다. 지금까지 총 25명이 졸업한 셈입니다. 이중에는 아직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고 수료만 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졸업 시점을 본인이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준비가 되면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하는 문제는 대안학교에 관심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물음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아니 아예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잘 살 수 있을까 궁금해 합니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여러 차원의 내용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우리 친구들은 훨씬 더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기, 돈도 넉넉하게 벌기, 그리고 타인이나 나에게 의미 있게 살기. 산돌을 졸업한 친구들은 그런 꿈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몇몇 졸업생들의 현재 모습을 소개합니다.

K군은 한옥목수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한옥을 짓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실습을 했는데, 일이 너무나 힘들뿐 아니라 너무 어린 나이에 길을 결정한 것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대학을 가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나이가 든 후에 선택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최근 우수한 성적으로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그동안 번 돈으로 우선 여행을 할 예정이며, 2학기에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K2군은 오리무중입니다. 본래 특이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친구이긴 하지만, 아직도 동굴에 있는 곰처럼 두문분출 자기 탐색에 깊이 빠져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빨리 나오라고 하지만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K3군은 1년여의 장고 끝에 프랑스 유학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한국은 너무 답답하고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받아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며 조기유학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L양도 프랑스를 선택했습니다. 이 친구는 본래부터 꿈이 분명하고 야물어서 자기 꿈을 꼭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의상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은 이 친구는 산돌졸업생 중 최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바 해외유학파로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L2양은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대학은 지금 당장은 싫고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모임에 다니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문단에 그 이름을 올릴 친구라 생각합니다.

M양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로써 <부모 떠나기>를 실천했습니다. 혼자 방을 얻어 살면서 전격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장녀로서 책임감 때문에 첫 걸음 떼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으나 먼 훗날 이런 그녀의 대담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줄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Y군은 Rocker로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문 밴드를 기웃거리며 좋은 연주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락에서 느끼는 자유를 세상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합니다. 겉멋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면 느끼게 됩니다. 그가 자기 음악의 길에서 진리의 길을 발견하기를 빕니다.

C양도 오래 전에 헤어-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고, 졸업 하자마자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유학도 생각하고 있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산돌을 졸업한 많은 친구들은 아직 분명하게 자신의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을 하고 자기 삶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전격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도 하고, 부모님의 사업을 도와 일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이미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각자의 선택은 자기 꿈을 향해 가는 첫 단계로서의 선택입니다. 저는 이 친구들의 선택을 보면서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되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혀보는 모습이 좋게 보입니다.

사회에서 현실의 삶을 경험하면서, 이 친구들은 말합니다. 아, 정말 산돌이 너무 좋은 공동체였다는 것, 그런 행복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살았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을 말입니다. 산돌을 떠나보니까 비로서 산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 산돌이 이처럼 행복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한, 이 친구들은 앞으로 그들이 선택한 삶 속에서 산돌에서 배웠던 자유, 생명, 평화, 영성, 생태, 나눔, 이런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들의 삶은 산돌에서 경험했던 그 이상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대단한 야망은 없지만, 자기 자신의 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선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위대한 보통 사람들인 우리 친구들에게 격려와 포옹을 보냅니다. 또한 그들이 만들어 낼 세상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하느님께서 늘 그들과 함께 하시길.

지난 2월말 아시아빈곤선교센터 CAMP, Center for Asian Mission for the Poor의 겨울사역 현장인 필리핀 마닐라의 빈곤현장에서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마리 로즈 Mary Rose로 12살의 소녀입니다. 당시는 캠프의 이사교회인 화도교회(황재우목사)의 청년 44명이 마닐라 톤도의 카트몬 Catmon이라고 하는 쓰레기 매립장 지역에서 빈곤지원사역을 진행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이곳은 17년 전에 조성된 쓰레기 매립장인데 현재 매립은 중단되었으나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뒤지거나 바닷바람을 이용해 폐나무를 가지고 숯을 만들어 생활하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화도교회 청년들은 한 주간 어린이여름성경학교와 쓰레기 매립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콘크리트로 만들어 주는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을 오갈 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마리로즈였습니다. 이 아이는 온 몸이 피부질환으로 곪아터져서 피가 날 정도인데 얼굴을 제외하고는 거의 온 몸의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시 소녀는 여름성경학교에 함께 참가하지 않으며 주변만 맴돌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사역 마지막 날 사역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임시로 마련한 집 앞에 이 소녀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너무 안쓰러운 마음에 캠프의 사역자들은 지역 리더와 함께 소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서 딸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2년 전부터 피부질환으로 인해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정형편상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그냥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캠프의 사역자들은 아버지에게 딸의 병원 진료에 대한 동의서를 받고 당일 마리로즈와 지역리더 그리고 캠프의 사역자가 지역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역 병원에는 피부과를 담당하는 의사가 마침 진료를 하지 않아서 소아과 전문의를 만나서 우선적으로 연고만 지급받고 다음날 다시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로즈마리에게는 목욕을 하고 연고를 꼭 바르라는 당부와 함께 걱정하지 말 것과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나을 수 있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로즈마리와 지역리더, 캠프의 사역자는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피부과 전문의는 피부질환의 원인에 대해 불결한 주거환경과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계속 긁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 같다고 하며 로즈마리에게 약한 지적장애가 있는 것 같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의사는 2주간 복용할 약을 처방하고 2주 후에 다시 방문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캠프의 사역자는 가족과 지역리더에게 매일 목욕을 시키는 것과 약을 꼭 복용할 것을 신신당부하고 이러한 소식을 캠프의 홈페이지에도 올리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2주간의 짧은 기간이 지나지 않아 로즈마리에게는 두 가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첫째는 2년간 그렇게 힘들게 했던 피부질환이 놀랍게 아무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즈마리는 피부질환으로 인해 남에게 몸을 드러내는 것이 창피해서 학교를 나가는 것도 중단했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다시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작은 예수사랑의 실천이 로즈마리의 2년간 말 못할 고통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하는 것을 통해 변화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쓸 무렵 현지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계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마리 로즈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보니 상처가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악화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소녀의 엄마는 다른 지역으로 가정부로 떠났고, 아버지도 무심한 성격인지라... 우리는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완전한 치료와 더불어 지속적인 공부, 그리고 희망을 일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