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 2021

 

 

 

 

 

 

 

 

 

 

 

 

  오늘을 바라보며

 

내 어린 시절의 가을 풍경

 

 

 

 

 

 

 

 

 

 

 





이 종 승


목사
여명감리교회
ghirinn@naver.com






 


요즘보다 꽤 쌀쌀했었다.
아침저녁으로 찬물 세수, 닦는 게 싫었던 내게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내복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던 시절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가을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추석에서부터 비롯된다.
추석이 되면 비로소 가을이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던 그런 경험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추석날은 가을 새 옷을 입는 날, 모처럼 장에서 사다주신 긴팔 옷에, 깁지 않은 새 나이롱(나일론) 양말…
"내년엔 작아져 못 입으니 일부러 큰 거 사왔다"며 팔소매 두 번 접어주시던 어머니는 한복저고리에 쪽진 머리의 아낙네였다.
아침마다 어머니는 색경 앞에서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셨다.
물론 그 참빗은 내 머리 속에 이와 석회를 색출해 잡아주는 도구이기도 했었다.

추석을 앞두고 어머니는 먼저 이발관부터 다녀오게 하셨다.
아이들은 딱딱한 나무의자 위에 판때기를 하나 더 얹어 그 위에서 이발을 했지만, 머리 깎다말고 존다고 이발사 아저씨한테 혼나기 일쑤였다.

추석날 아침, 예배를 드리고 큰 상에서 배불리 먹고 나면, 열심히 칼각으로 접어 두었던 딱지 가지고 나가 동무들과 딱지치기를 했다.
다들 누런 코들을 훌쩍이며 딱지치기에 골몰하다 보면, 두 번 접은 새 옷 소매는 손끝까지 길게 늘어지고, 나도 모르게 훌찌럭 거리는 콧물을 훔치다 보니 소매 끝은 이내 반질반질 해졌다.

살던 집은 서울 변두리, 좁은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는, 철도길 가까운 곳이었다.
목수였던 아버지 덕에 '대가리가 큰 못'을 가지고 나가 철로 위에 얹어 놓으면, 지나가는 기차 바퀴에 눌려 뜨끈뜨끈한 납작칼이 되곤 했는데, 다양한 종류의 못을 동원할 수 있었던 나는, 그것이 또래 아이들에게 꽤 커다란 유세거리이기도 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철도길 너머 뉘엿뉘엿 지는 붉은 햇살의 노을, 어린 철부지의 눈에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심의 추억을 아직까지도 간직할 수 있게 해준 풍경이었다.
그리고 철도길 따라 끝도 없이 피어있던 들국화, 가을 코스모스...

철도길 건너편에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카키색 제복의 미군들은 너무도 깨끗해 보였지만, 가까이 가면 그 이상한 빠다? 냄새 때문에 가까이 가는게 무서울만큼 수줍음이 심했던 나로서는 그 흔한 껌조차 잘 얻어먹어 보질 못했다.
더욱이 미군들한테 구걸하지 말라던 아버지 엄명 이후로 그나마도 '헬로! 기브 미 껌'과 같은 유창한 나의 영어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엔 누나의 귀갓길을 집앞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누나들에겐 '아들만 귀여워한다던' 부모님 덕분에 밉살스런 동생이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배급받은 빵이나 말린 우유 등을 남겨와 내게 나눠주던 누나의 책가방이 늘 반가웠다.
그 맛있는 것들을 먹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누나들이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졌던 만큼 철없는 아이였지만 유난히 나를 더 챙겨주고 아껴주던 둘째누나가 몹시도 그립다.
그 누나는 내가 결혼을 하고 둘째 녀석이 태어나기 전에, 어릴 적, 들꽃이 끝없이 만발한 그 철도길 따라 붉게 노을 진 하늘로 멀리 떠나가셨다.

몇 년 전인가?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누나의 무덤 주변에 참으로 우연히도 피어있는, 하얀 구절초(들국화) 꽃들을 보면서, 그 철도길의 꽃들과, 붉은 노을과, 교복 입은 누나와, 누나의 책가방이 생각나 한참을 소리 없이 울기도 했었다.

아무튼 훗날, 커다란 흰 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제일 좋아했던 말린 우유 배급은 없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받아든 둥그런 옥수수빵 맛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하지만 누나들처럼 집에까지 남겨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몇 년 전 동네 제과점을 가 보았더니 거기에 옛날 그 옥수수 배급 빵과 비슷한 모양의 빵이 있기에, 두말 않고 몇 개 사들고 집에 와 먹어보니 향수만 있을 뿐 맛은 전혀 그 맛이 아니었다.
깔깔하면서도 옥수수빵 특유의 냄새가 가득한 그런 맛! 말이다.
그나마 우리 애들은 “뭐 하러 이렇게 맛없는 빵을 사오셨나?”하는 눈치다.

그리고 추석과 같은 명절이 낀 주일날이면, 아버지는 꼭 나를 데리고 서울 시내에 가셨다.
그곳은 교회였다.
지금은 없어져 아쉬운, 동대문 바로 위에 위치했던 교회.
남들은 성묘 다녀오고 큰 집에 모여 시끌벅적하던 시간이었지만, 이산가족인 우리 집은 명절날이 오히려 더 쓸쓸했으니, 교회는 울 아버지가 찾아뵐 유일한 큰집이었나 보다.

아무튼 기억나는 서울 시내 풍경이 있다면, 종로 한복판에 놓인 철로를 오가는 전차들, 그리고 가끔 말을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기마경찰아저씨...

올해도 추석을 지내고 늦은 가을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절모자를 쓰고 정장을 차려입은 아버지, 그리고 정성껏 한복으로 갈아입은 어머니 손을 잡고, 이곳에서의 유일한 뿌리였던 할머니 성묘 가던 기억들, 동무들과 함께 황금들녘에서 메뚜기 잡아먹던 기억들, 논길 따라 단풍진 숲을 지나 동네 교회에 가던 일들은 이제 기억에 아련한데……

오늘 난, 이미 환갑이 넘었다는 이유로 일상적인 게으름과 근심에 익숙해져서, 그때 절박한 시대, 어떻게든 주어진 삶에 충실하려 안간힘을 쓰셨던 부모님의 억척스러움과 성실함과 믿음 생활 속에 배어든 그 절실함과 갈급함을 오래전에 이미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소중한 것을 말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중절모자에 양복을 즐겨 입으셨던 건장했던 아버지는 요양병원 환자복을 입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고, 치매로 고통받던 어머니는 그보다 훨씬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지 십 수 년이
지났건만, 정작 흘러버리고 잃어가는 것은 어린 날의 그 소중했던 내 삶의 reality와 지금까지도 잊지 말고 지켜야할 삶의 진실된 뿌리, 힘든 세월 속의 아버지 어머니가 교회 갈 때마다 꼬~옥 잡아 주셨던 투박한 손의 온기.
그리고,
구절초 만발한 그 철도길의 노을 진 하늘로 가신 누나와 누나의 책가방.
그리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선명한 사진처럼 항상 간직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2021.10.29. 재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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