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2018

 

 

 

 

 

 

 

 

 

 

 

 

  오늘을 바라보며

 

나무의 순환

 

 

 

 

 

 

 

 

 

 

 





안미영


목사
정다운교회
기독여성살림문화원이사장
thyhope@hanmail.net






 


앞마당 작은 텃밭에 토란 대를 자르는 일을 마지막으로 가을걷이를 끝냈다. 한 여름동안 때맞춰 자라는 꽃과 채소들로 가득 하던 땅이 검은 빛 맨 얼굴을 훤하게 드러낸 자리에 가을볕이 한가롭다. 빈 땅 위에 마른 나무들과 부러진 가지들이 널려 있다. 조금 굵은 것은 해바라기 줄기이고, 잔가지들은 고추나무와 들깨나무, 울타리 콩 줄기들이다. 한 생을 다 살고 난 나무들의 쓸쓸한 흔적을 보는 것 같아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든다. 마당을 정리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마른 나무들을 한 곳에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마른 나무에 불을 붙이자 죽은 듯이 조용하던 나무가 바스락 바스락 작은 소리를 낸다. 소리와 함께 한 귀퉁이에서 새빨간 불꽃이 반짝 거리더니, 갑자기 피어난 하얀 연기가 가느다란 줄을 길게 그리며 느릿느릿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저리 움직이는 하얀 선이 투명한 공간 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신비스럽다. 소리는 점점 더 커져서 타닥거리고, 불꽃이 크게 일어난다. 나무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올라서고 내려앉고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위가 환하게 밝아진다. 훅하는 더운 기운이 찬 공기를 덥힌다. 활활 타다가 조금 잦아들고, 조그만 불길만 비추다가 꺼져버린 듯 조용하다. 그러다가도 바람이 조금만 일면 언제 그랬나는 듯 다시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아무 쓸모없이 땅에서 썩을 수밖에 없었던 마르고 부러진 가지들이었는데, 불을 만나자 한데 어울려서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불꽃을 피우고 있다. 마지막 남은 혼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르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의 황홀하고 처절한 모습 속에 내 지금의 삶이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

내 삶도 마른 나무와 같이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불타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한 번 더 불꽃을 피우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싶은 내 마음에 보내는 신호인가? 타다만 나무라도 불을 만나면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 이 세상에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할 일이 있는 것이고, 마지막 삶이 더 강렬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불꽃들이 내게 말해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내 나이도 어느덧 칠십대 중반에 들어섰고 남편은 병원에서 사는지가 삼년 가까이 되어간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도 계획하지 않았던 일, 갑자기 일어난 사고가 만든 일이다. 그런 우리모습이 한 생을 다 살고 난 마른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슬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죽음을 가까이 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처럼은 살지 않고 더 나은 인생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나도 이런 후회가 남아 있다. 그러니 그 있는 사랑을 마지막 불꽃을 피우듯 다 써야 하지 않을까? 현실이 슬프다고 탓하지만 말고,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불씨를 찾아내서 불을 살려 내고, 연기처럼 바람에 나를 맡기고 그냥 가볍게 하늘로 날아가고 싶다.

나무가 다 타고 난 뒤에 하얀 재가 남았다. 다 다른 나무들이었는데 재가 된 모습은 그냥 똑같다. 꽤 많은 나무를 태웠는데 손으로 담는다면 대여섯 움큼이나 될까? 열기가 식은 다음에 만져보니 부드럽고 포근하다. 땅위에 고요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바람이 재를 건드린다. 재가 몸을 조금씩 움직인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 여기저기로 날아간 재들은 다시 땅으로 내려오겠지, 땅속에서 어떤 씨앗 옆에 앉아서 싹을 틔우는 거름이 될 것이다. 또 어떤 재들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하늘에 머물면서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가, 언젠가 하얀 눈으로 우리 집 마당을 다시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았던 헛된 것이 아니라고, 또 다른 삶이 내 앞에 열려 있다고 희망을 가지고, 바람타고 날아가는 모닥불 재를 정겨운 눈으로 바라보며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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