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부쩍 당혹스런 목사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는다. 듣기에 싫지도 좋지도 않다. 그러나 어떤 전환, 어떤 새로움이 나에게서 나타났음은 분명하다. 대안교회를 지향하는 여울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4년이다. 대안적 신앙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있을 수 없다.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인식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대안적 가치와 실천들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대안의 의미를 불편함에서 찾았다. 한국교회가 무례한 타자관으로 경도된 까닭은 ‘다자의 공존’이 주는 불편함을 은혜로움 (조화로움)과 상치된다고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동안 나는 대안의 의미를 저항의지에서 찾았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거룩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당위적 세계 거부하기’라는 새로운 대안찾기에 빠져 지내고 있다. 여울교회는 어린이 설교를 연이어 어른들 대상의 설교를 한다. 얼마 전 주일, 그날의 성서본문은 ‘섬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설교를 준비하며 며칠을 고민했다. 어린이들에게 섬김을 가르치는 것에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섬기라’는 말이라며 나는 설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섬김을 실천할 수 없다며 얘기를 이어갔다. 교인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디아코니아의 삶은 경험과 영성의 충분한 성숙 후에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며 좋아하는지를 인지한 상태에서만 응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 이야기를 풀었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 섬기라는 말, 그리고 모든 형태의 ‘당위의 세계 ought to’에 무척 큰 거부감을 느낀다. 당위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한 개인이 성숙한 존재에 이르는 데 가장 큰 해악이란 생각까지 든다. 섬김이 싫다, 맹목적으로 감사하지 마라, 낮아지기 싫다 등, 당위적으로 따라야한다 여겼던 가치에 의문부호를 달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따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우린 풍부한 영적 공간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정직함이 자라나고, 나에 대한 참된 앎과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이해까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비록 목사답지 않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지만 나는 과감하게 이 전환의 행복을 더 만끽하기로 했다.

몇 해 전, 지난 삶의 여정을 개인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왜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물었다. 성찰의 시간을 보내며, 지난 세월 내가 뭔가 참으로 잘못 살았다는 감정이 아프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싫고 힘들어도 해내려했던 마음이 자긍심이 아닌 부끄러움으로 다가오는 낯선 경험을 한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미덕을 갖추기 위해 “너는 이것을 해야 해”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던 순간들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의미 없이 다가왔다. 위기 중의 위기가 이것임을 알게 되었다. 기계가 되어, 노예가 되어 살면서도, 무언가 가득 채워진 듯 자기만족 속에 빠져 지내는 것, 이것보다 더한 위기가 있을까? 이 위기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성소식별과 같은 프로그램이 부재한 교육환경에서 자란 탓도 있지만, 그보다 한국교회의 영성 분위기, 즉 타율적, 위계적, 억압적인 성격이 내게 부정적으로 끼친 영향력임을 분별하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나를 당위적 실천의 세계에서 한발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 응답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어떤 종교적 신념, 가르침에 대해서도 거리두기를 하고자 다짐했다.

이러한 전환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관계나 공동체에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을 끊어내는 일에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서이다. 宗敎가 폭력이고, 폭력이 宗敎라 하지 않는가. 선함, 신념, 이념, 교리, 원칙과 같은 것들이 공동체 내에서 폭력의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애국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청년들이 더 희생당하는 아이러니와도 같다. 어쩌면 종교가 가장 폭력적인 당위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의 이름으로, 전통의 이름으로, 교리의 이름으로 얼마나 힘겨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강요해 왔던가. “나는 가졌다, 고로 존재한다”는 물질주의의 시대에, “나는 선하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짐까지 더해 사람들을 착취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지 않다.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가 되지 않아도, 종교적 미덕을 갖추지 못해도, 대단한 것들을 실천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와 너로 수렴되는 그 기쁨을 향해 나는 행복한 전환을, 당혹스런 역전을 계속한다. 한걸음 정직해졌다. 한걸음 더 나다워졌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내가 누리는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이 자유를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지기에 가혹한 짐을 지우고, 너희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는구나 (눅 11,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