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아베 정부.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엄연히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갑자기 휘리릭~ 하고 사라지는 마술이라도 부리겠다는 것일까? 거기에 2014년 7월 1일 이후로 집단자위권이 가능하도록 헌법해석을 달리 하시겠다는 발표를 했다. 극우파인 일본의 여당이 억지를 부려 이루어낸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후퇴, 즉,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자국의 ‘보호’와 ‘이익’을 위해서는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상식적 논리다.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를 그토록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더욱 혹독하게 짓밟는 잔인한 선택들이 일본 정부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로서 치욕스런 대우와 끔찍한 경험을 한 할머니들은 지금도 여전히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쏟으신다. 얼마 전 우리 센터 프로그램인 Peace Seminar에서 방문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시청했던 영상 속 한 위안부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내 꽃다운 젊은 시절을 돌려줘.” 영상 속 할머니는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이었으나, 나에게 보이는 것은 여리고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서러움과 간절함, 억울함과 분노가 합쳐져 할머니의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나는 할머니의 감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우리 참가자들도 다함께 같은 감정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나 우리와 함께 감정을 공유할 수 없었던 참가자들도 있었는데 바로 일본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었다. 자국의 충격적인 역사를 처음 알게 된 터라 그들의 굳은 표정과 황당함은 숨겨질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위안부 문제가 더욱 무거웠나보다. 프로그램 스텝으로서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이 쓰리기도 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 참가자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왜냐하면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이유가 여성으로서 새로운 관점에서 평화를 만들고 모든 폭력의 집합체로서의 전쟁을 중지하자라는 것이 목적이지 어떤 특정한 집단에게 죄의식을 안기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들이 점차 달라졌다. 자신들의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또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지하기 위해서 정대협에서 진행하는 수요시위에 가서는 우리를 대표해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이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진실을 알고 씨름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던 것이 성급했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이 우리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진리를 알고 자유롭게 되기까지는 적극적인 깨우침의 과정이 필요하다. 진리를 아는 것 자체가 괴로운 초반, 그것과 자신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중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진리가 앎과 행동으로 융합되어 자유해지는 후반… 그들은 이 과정들을 충실하게 밟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마가복음 16장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고 증언하고 있다. 진실을 알게 된 직 후에는 그 진실에 압도되어 무서움을 느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위안부 문제에서는 이 말씀에 나오는 여성들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놀라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세 여인이 결국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말함으로써 그 시대에 팽배했던 norm 즉, ‘상식’을 뒤엎는 행위를 하였다. 이는 진리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함으로써 breaking the silence, 침묵을 깬 용기있는 행위였다. 우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두 마리아와 살로메와 같이 아무도 믿지 않으려하는 진실을 말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지해온 이들 또한 진리를 발견하고 침묵을 깨기까지의 필요한 과정들을 거쳤을 것이다.)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할머니들은 진실과 진리를 말하고 있고, 그것이 미래를 향한 현재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진리를 부정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그 진리를 왜곡할 수 있는지를 고심할 게 아니라, 진실과 진리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진리가 그들을 자유하게 하는 단계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괴롭고 불명예스럽더라도 일본의 변화와 자유를 위해서 당연히 거쳐야할 과정이지, 지금처럼 회피해서 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은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으로 진리와 자유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침묵을 깬 위안부 할머니들께 사죄하고 감사하며 할머니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져야할 때이다.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