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개신교의 일부 교단이 총회에서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세습이란 자기 소유를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소유물에 대한 소유자의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처분권을 전제로 합니다. 이처럼 재산의 세습은 그 재산을 소유한 자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기에 소유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세습은 하나의 제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경우에 세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습득한 물건, 혹은 벌어들인 물건에 한정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담임목사직은 세습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담임목사의 직책이 한 교회의 영적 지도력과 관련된 것이고, 그 지도력은 교회 공동체에 의해 인정 認定되고 확립되는 불가시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직 “세습”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일부 교회에서 일어나는 후임 담임목사 선출 과정이 세습의 외양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서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지체이며 그 지체들이 서로 연합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각 지체는 서로 다른 모양과 분량으로 은사를 받지만, 그 은사들이 서로 어우러져 교회의 덕을 이루고 모두 유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담임목사직은 교회를 형성하는 여러 지체 가운데 말씀과 치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하나의 직책입니다.

하지만 개교회의 성장과 교회 사이의 경쟁구조가 형성된 한국교회 현실에서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능력은 특히 큰 권위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목회자의 카리스마적 능력은 성령의 선물로 부여받은 은사로서 공동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카리스마를 받은 목회자가 공동체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양한 은사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는 위계구조와 권력관계를 형성하거나 특권의 집중화와 특정인의 지배욕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교회의 급속한 외적 성장을 위해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강력한 지배력과 통제력을 요구하고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담임목사에게 권력과 특권을 허용하는 상황이 적지 않지만, 이처럼 권력을 독점한 카리스마는 공동체 안의 은사 평등성을 깨뜨리고 그 카리스마를 사용하는 특정 개인을 우상화하거나 그 권위를 절대화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카리스마의 오용이 체질화된 풍토가 담임목사직을 사유화하고 세습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지 않을런지요.

담임목사직 세습의 다른 문제는 그것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부계 혈통을 강화하고 계승하는 일과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세습은 부계 혈통에 귀속되어 있는 하나의 특권으로 개개인의 선택과 의지, 노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혈연에 따라 주어진다는 점에서 철저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혈연의 배타성을 앞장서서 주장해 온 것은 가부장제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는 여성들의 생존전략의 하나로, 본질적으로는 가부장제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아선호의식과 가족이기주의가 가부장제 문화의 파생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이에 순응하는 까닭도 여성들의 기생적인 특권 유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담임목사직 세습이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교회여성들이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교회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고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특권과 지위, 혈연에 의해 그 지위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부르고 그들과 계약을 맺어 교회를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의 개방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혈연에 따라 교회에 허락된 은사의 직무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성서나 하나님의 경륜에 아무런 근거도 갖지 않는 일임을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혈연과 혈통이 주인이 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그 분의 주권을 선포하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존재하고, 그 몸은 갖가지 은사들을 받은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여 교통하는 유기체로서만 존재합니다.

세습방지법을 계기로 교회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성찰하면서 교회의 은사 공동체가 새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