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11

 

 

 

 

 

 

 

 

 

 

 

 

  오늘을 바라보며

 

공명으로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향하여

 

 

 

 

 

 

 

 

 

 

 





이순임


목사
한양대학교 교목
soonim@hanyang.ac.kr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제가 아주 행복했어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더 즐거웠는걸요”….

이런 말들은 모두 우리가 상대방에게 감사를 표할 때, 또 상대방이 내게 감사해 한다는 것을 시인하며 답례로 쓰는 인사법들이다. 이런 말들은 누군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적어도 잠시 동안이나마 내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믿는다는 표시나 다름없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남은 달리 말하자면 인생이라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다. 예수 역시 이 인생의 학교에 입학하여 본래의 신성의 옷을 벗고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신의 옷을 입고서 우리와 똑같은 삶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아내시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범을 세워주셨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다(로마서 15:3). 인생의 학교에는 투사, 자기-책임, 그리고 공명의 학교가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경험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하게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투사학교에서는 자신이 행복하거나 만족스럽거나 혹은 기분 나쁘거나 언짢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존재나 행동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우리는 현재 엄청난 위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몇 가지 신념 중의 하나인,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때문이야”라는 신념을 배운다. 투사학교에서 우리는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이, 심지어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의 화, 두려움, 슬픔, 즉 우리를 괴롭게 하는 모든 감정들에 대해 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며 비난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의 존재 상태, 태도, 감정, 심지어 우리 행동에 대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의식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책임학교에서는 남들의 행동이나 상황과는 무관하게 어느 순간에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 책임은 100%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자기책임에 의해 우리가 되찾을 수 있는 의식의 힘을 잘 보여주는 예로, 극단적이었으나 실제 삶의 경험이었던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들 수 있다. 그는 가장 잔인한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록 전쟁포로 수용소에 있었지만) 결코 앗아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직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반응하는 방법, 즉 자신의 인식, 생각, 감정을 선택할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명학교에서는 중도를 취한다. 우리가 그 누구에게도 어떤 것을 인지하고 느끼도록 ‘만들’ 수 없지만, 타인들의 느낌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우리들 자신이 모든 생각과 감정 일체를 만들어내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로마서 15:5). 다시 말해서 예수와 위치에너지가 같아지고, 이는 결국 우리의 주파수를 예수께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지니게 되면, 남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다는 말이리라.

예를 들어 잔뜩 화난 상태에서 어떤 방으로든 걸어 들어간다면, 그리고 그 방에 어떤 사람이 고요한 평온의 상태로 앉아 있다면, 결국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평화로운 파동, 그들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 그들에게 ‘공명’하기 시작하면서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의 평화가 거울이 되어 자신의 화난 모습을 정확히 비춰줌으로써 불편함이 일시적으로 더 커지는 순간이 잠시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들이 있는 데서 자신이 더 평화로워지는 걸 막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 상태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존재 상태에 공명한 것이다.

이처럼 공명에 대해 경험해본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남들을 비난하지 않고, 세상을 한층 더 평화롭지 못하고 폭력적인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맹렬히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멀리 또는 가까이 있는 남들의 존재 상태에 영향을 미칠 만한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의 ‘존재’를 아마도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옛말에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혹은 ‘반응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 파동이 미치는 차분한 영향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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