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농사 못 짓겠어”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삼아 살아오신 우리 진천 마을의 칠십이 다 되신 어르신들의 한탄하시는 말씀이다. 농사에는 국가 대표급 선수들이신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어려워진 것이다.

유난히 추운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고 마음도 따라 위축되는 지난 겨울 유난히 봄을 기다렸다. 하얀 눈과 얼음은 흙을 뒤덮었고 우리 농민들의 마음도 하얗게 되어 올 농사는 우리의 파트너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 막막한 가운데 한숨짓고 있다. 농민들 스스로의 책임도 있지만 구조와 정책의 문제가 크다. 생명살리기를 본격적으로 꿈꾸며 시골로 내려온 지 12년이 지났다. 풀 한 포기, 새싹 하나에 감격하며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4년 전부터는 너무 많은 비에, 농사에 잘 맞지 않는 기후, 농업 정책과 농촌 현장의 많은 문제들로 인해 농사짓기가 겁이 날 정도에 이르렀다. 이는 육십년간의 삶의 과정에 겪었던 어떤 일보다 답을 찾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산업선교, 기독여성운동, 사회선교 등의 20년 사역에 이어 남은 시간의 일을 여성 중심의 생태공동체-대안적 사회를 꿈꾸며 무주로 내려와 첫가을 농사를 조금 지었다. 그러던 중 수리하여 살고 있는 헌집에 먼저 자리 잡고 사는 서생원들 때문에 여성공동체 본부를 바로 짓기 시작했다. 그 마을의 도목수 어른 두 분과 일꾼 두 분 그리고 우리 여성들과 일하는 예수회 후배들, 귀농한 청년들 등 여럿이 힘을 합해 산기슭에 흙과 나무로 지은 한옥은 너무 좋아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였다. 남자들만 대표로 참석하는 마을회의에 우리 여성공동체 가장으로 나가는 재미도 괜찮았고 먼저 내려와 공동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젊은 귀농청년들과 흙집 짓는 일, 유기농업을 배우고 정농회에도 따라가 바른 농사를 추구하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서로 돕는 모습은 어려운 중에도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 곳에 안주하고픈 나에게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미션이 주어졌다. 생태마을 만들기, 생명농업을 기반으로 생명목회에 관련된 노회활동, 강의, 글쓰기, 지역생태환경에 관한 일들을 하는데 있어 그 길을 같이 갈 파트너를 붙이신 일이다.

처음엔 무주와 김제를 오가며 농사를 지었으나 결국 무주의 일은 후배들에게 넘기고 김제에서 호박고구마를 비롯해 고추농사, 콩,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심고 그 다음해부터는 벼농사에 도전하여 쌀겨농법, 우렁이농법 등 생태농업을 활용하여 원래 우리 선조들이 해 왔던 자연농업을 되찾는 시도를 했었다. 이도 몇 년 지나자 가짜 유기농 쌀 파동과 이로 인한 유기농 쌀이 남아도는 사태에 이르러 우리는 논농사를 중단했다.

건너 마을에 무농약 벼농사 작목반을 구성하는 일, 또 우리 ‘생명살림터’ 작목반을 두 개 면에 걸쳐 구성하여 영농조합법인으로 등록하고 친환경 인증 교육을 함께 받기 위해 충북 괴산, 오창센터에 가고 오는 일 등으로 무척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생명을 살리며 사람답게 사는 -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나누고 섬기는 삶을 추구하는 - 삶을 살아 훼손된 자연을 회복하게 하는 일, 생명먹을거리를 생산하여 생명을 돌보는 일,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바쁘지 않게 살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서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바쁜 삶을 사는 우를 범하고 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심각한 것은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일을 해도 농촌경제가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므로 차라리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 낫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한편 임실 신덕 월성리 산 속에 십여 가구의 참여로 공동체 마을을 시작하여 3년 전부터 한 가구가 들어와 살고 또 한 집은 계속 오가며 집을 지어 가고 우리는 5년 걸려 생태집을 열두 평, 열여덟 평의 두 채를 지어 몇 년 전부터 잘 사용하고 있다. 물 좋고 맑은 공기는 생명력을 뿜어내 지친 몸도 활기차게 하고 인간관계도 화기애애하게 하여 마음이 따듯해져 행복을 느끼게 되고 아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오늘날 이 땅은 우리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오염되고, 기후이상은 늘 해오던 농사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는 막바지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적어도 십 년 이내에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이 지구를 멸망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물론 후손들의 삶을 위한 토대 마련은 ‘지금! 여기에!’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이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