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학생들에게 나의 졸저, 『아브라함과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을 읽고 서평을 제출하게 했다. 학생들 자신의 견해와 비평적인 시각으로 쓰라고 독려했더니 신나게들 비판을 하였다. 한 남학생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면 어떻고 “아브라함과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이면 어떻다는 것인지, 왜 이렇게 시시콜콜 성경을 캐고 해석하여 여성 등장인물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것인지, 저자가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자인 듯하다고 몰아부쳤다.

“젊은 여성 리더십세미나”를 열면 이렇게 말하는 참석자들이 꼭 있다. “행사 제목에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고. 그러면서 본인은 “평소에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맞다. 대부분의 우리는 딸들을 그렇게 잘 키운다. 딸을 아들과 별로 차별하지 않고 본인이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게 평등하게 키운다. 그런데 문제는 아마 대학 때까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딸들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고 결혼과 육아의 현실에 부딪히면서 자신이 여자임을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사회, 교회, 문화가 힘들어진다.

25위, 61위, 115위. 무슨 등수일까? 지난달 세계여성의 날 즈음에 미디어가 일제히 한국의 성평등 등수를 실었다. 한국은 유엔개발계획 UNDP의 남녀평등지수 GDI로 2009년 155개국 중 25위, UNDP의 여성권한척도 GEM로는 109개국 중 61위, 세계경제포럼 WEF의 성 격차 지수 GGI로는 134개국 중 115위를 각각 차지했다. 달라진 게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 격차가 좁은 나라로는 아이슬란드가 1위였고, 그 뒤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 따랐고, 뉴질랜드, 덴마크,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일랜드, 필리핀, 레소토도 10위권 안에 들었다. 성평등은 국가의 GDP와 비례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건강, 생존, 교육 부문의 성평등은 잘 이뤄지고 있지만, 경제 참여, 기회와 정치권한 부문은 남녀 격차가 심각하다고 한다. OECD국의 남녀임금격차 평균이 25%이고, 한국이 38%이라는 최근 통계도 그러하다.

한국이 세계 1등을 하는 부문도 있다. 강간과 포르노 소비이다. 2002년 서울의 인구 10만명당 강간 발생률은 24.1건으로 뉴욕 (20.9건), 도쿄 (2.2건) 보다 높았다. 또한 뉴욕의 경우 1992년 38.2건에서 20.9건으로 줄어들었지만, 서울은 10.1건에서 24.1건으로 늘어났고, 계속 늘고 있다. 한국 여성의 전화의 경우, 한해 600여건의 강간 등 성폭력 상담 건수 중에 경찰에 고소하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곧 드러나지 않은 건수를 합치면 한국은 명실 공히 강간 왕국이다.

포르노 소비의 경우, 2006년 최다 소비국 순으로 1위가 중국($ 27.40 billions; 일인당 $ 27.41), 2위가 한국($ 25.73 billi- ons; 일인당 $ 526.76), 3위가 일본($19.98 billions; 일인당 $156.75), 4위가 미국($13.33 billions; 일인당 $44.67)이다. 일인당 소비를 생각하면 단연 한국이 1등이다.

지난 몇 십년간 한국은 많은 발전을 했다. 통계청의 ‘2009 통계로 보는 대한민국’은 지난 1970-2008 동안 한국은 세계 14위의 부국이 되었다고 한다. 2008년 국내총생산 GDP는 1970년에 비해 370배 팽창했다(254달러에서 1만 9,231달러로). 그간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키는 남학생이 13.4cm가 더 커졌고 여학생은 15.2cm가 더 커졌다. 몸무게도 남학생 13.1kg, 여학생 12.4kg이 더 늘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권도 어린이 키나 몸무게 만큼인지는 몰라도 꽤 성장을 했다.

남학생들의 서평을 보면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본다. 남학생들이 상상 이상으로 새 시대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이후 졸업 때마다 딸이라고 상급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두었고, 사회 역시 훨씬 성차별이 심했을 때 자랐다. 그런 내가 보기에 정말 1990년생 이 학생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듯하다. 우리는 아들들도 잘 키웠다. 이들에게 성평등이란 당연한 전제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남학생의 경우 또한 같은 전제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어쩌면 이 2년짜리 남자수강생 대부분이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이 친구들이 차곡차곡 가부장제의 아자씨로 길들여지지 않고, 새 세상을 부단히 선택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다음 서평 숙제의 책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