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불멸의 화가 반 고흐의 작품 전시회를 보러갈 기회가 있었다. 이미 몇 년 전에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특별전시를 할 때 본 것이기는 했지만, 내 나라에서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남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아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니 나의 작은 기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유치원 아이로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들의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관람객을 수용한 것과 시끄러운 것은 차치하더라도, 더욱 심각한 것은 어머니들이 마치 전문비평가인 양(?) 아이들의 작품 감상을 방해하며 설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순간, 짧은 유학생활에서 경험했던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해외에서 살다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예로부터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 敎育, 國家百年之大計也”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백년은커녕 바로 눈앞에 직면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교육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점인데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교육방식이다.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방식으로 수업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토론하고, 똑같은 과제물을 부과하고, 똑같은 시험을 치루고, 점수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차이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점수라는 외부적인 보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점수가 도대체 무엇인가? 점수를 통해서 개인의 내면적인 세계의 꿈과 이상의 바탕이 되는 정신적인 양식을 가늠할 수는 없다. 점수는 외면적인 표시로서 개인이 교육이라는 게임에 참여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현실은 너나없이 이 점수에 몰입하게 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현실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모든 어머니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단언한다고 해서 국가, 학교, 사회 등 총체적 교육기관과 제현장의 문제들을 지나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의 뿌리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학습에 대한 보상은 점수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기쁨과 만족과 행복으로 표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이 이 줄 세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식들이 앞에 서기를 갈망하면서 공교육이 파괴될 정도로까지 사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사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인성교육이 결여되게 되었다. 만약에 어머니들이 집착하고 있는 줄 세우기를 포기한다면, 아니 개인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들이 잘 발현되도록 교육의 방향을 돌린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자녀들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로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사교육비의 감소는 가계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또한 공교육을 펼치는 교사들은 가르치고자 하는 의욕이 증가될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미리 사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와서 학습욕구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머니들이 제자리 찾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줄서기에서 몇 번째에 섰는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인성교육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공동체적인 윤리의식을 함양하는 데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정교육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유대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교육에서는 부모에게 제일의 의무가 자녀 교육에 힘쓰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어머니들이야말로 최초의 교육자이며, 자녀들을 가르치는 의무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부모의 역할이 자녀에게 주기만 하는 것임을 확신하며, 나이가 들더라도 자식에게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에서는 자식의 출세가 나의 출세이며, 이것은 곧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는 것처럼 여기지 않는가.

이제 가정은 더이상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을 양산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어머니들이 먼저 자녀교육에 대한 의식을 바꾸어 자녀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과감하게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 그 행복을 누리게 하는 어머니들이 되어야 참다운 가정교육이 실현될 것이고, 이는 곧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