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마다, 담을 허물어야지. 물길을 인력으루다 막을 수 있는가. 물은 그저 저절로 흐르게 놔둬야 하는 법.”
등 뒤에서 들리는 점잖은 목소리에, 두 마리의 아기 염소와 어미 염소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거기, 늙은 황소 한 마리가 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이번 수해에 떠내려 오셨어요? 어느 쪽에서요?”
임진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묻고,
“할아버지도 이번 수해에 떠내려 오셨어요? 어느 쪽에서요?”
한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또 똑같이 물었습니다.
“어느 쪽은 어느 쪽! 떠내려간 자식 찾아 나섰다가 흘러들었지. 그게 언제였던가, 여긴 참 살기가 좋아. 먹을 게 지천이고 둑도 담도 없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온갖 새들과 짐승이 서로 해치지도 않고.”
“우리도 여기서 살면 되겠네요.” 임진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하고,
“우리도 여기서 살면 되겠네요.” 한강으로 떠내려 온 아기 염소가 말했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
한탄강으로 떠내려 온 어미 염소가 말하고,
“마찬가지다마다, 물까지 사 먹는 쪽에도 옛날엔 거렁배기가 많았고, 밥을 굶는다는 쪽도 그 뭐시냐, 김선달인가 안선달인가 하는 사람이 대동강 물 팔아먹었다느니….”
언제부턴가 여기 산다는 황소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음머!
“정말로 어느 쪽이나 마찬가질까요?”
지금까지 자신 있게 말한 어미 염소가 황소 할아버지를 바라봅니다.
“그렇다마다. 옛날엔 안 그랬느니. 형제가 서로 자기네 볏단 져다 주다가 달밤에 마주쳐 얼싸안고 울고….”
황소 할아버지가 그 커다랗고 순한 눈으로 육지 쪽을 바라보며 말하고,
“맞아요. 저도 알아요. 친구끼리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하나 주웠는데, 배를 저어 강을 건너던 중 그것을 물속에 던져 버린 얘기도 있어요.”
어미 염소가 또한 뿔을 치켜들고 수염을 바람에 날리며 말했습니다.
“옳거니, 그렇구말구. 둑도 담도 허물고 욕심도 버리고, 서로 돕고 나누다보면 거기가 천국이지. 짐승이나 인간이나 지 할 탓이지.”
황소 할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소 웃음을 웃고, 아기 염소들은 어느 새 풀밭을 세로가로 뛰며 놀고 있었습니다.

전동차가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보통 때와 같이 전동차 안의 형광등이 깜박 꺼지는가 싶더니 다시 켜지고, 손 전화 신호음에 잠이 깬 처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말했습니다. 전동차 안에 가득 찼던 각종 동물들은 보이지 않고,
“반갑습네다!”
앞발을 내밀었던 뿔테 안경의 염소 또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내 그림자였나 보군 그래.”
동화작가 염소우 선생은 갑자기 마음이 다급했습니다. 어서 집에 돌아가 뿔테안경 돋보기를 쓰고, 동화를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