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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마다 장이 섰다. 길산 吉山장은 4일과 9일에 섰다. 장날은 대개 비가 왔다. 그러나 그해 겨울방학 중엔 대체로 날이 맑았다. 할머니는 떡을 만들어 팔았고, 나는 엿을 떼다 팔았다.
아이들은 ‘양잿물 놀이’를 했다. 처마 밑에 매달린 굵다란 고드름을 막대기로 쳐서 떨어뜨린다. 그 가운데 굵기와 길이가 적당한 토막을 골라내어 신문지 조각에 싸고, 그것을 지푸라기로 모양 좋게 묶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가 오줌독에 담갔다가 꺼내면 꼭 양잿물 덩이같이 보였다. 그것을 길거리에 던져 놓는 것이었다. 그러면 장꾼이 지나가다가 집어가는 것이다. 대개 아주머니들이 속았다. 함지박을 이거나 보퉁이를 들고 지나가던 장꾼이 속아 그것을 들고 가면, 집 모퉁이에 숨어 보던 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그 중에 방앗간집 막내아들도 섞여 있었다.
나는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대바구니엔 가래엿이 담기어 있었다. 굵은 것은 십 원씩에 팔고, 손가락 굵기의 짧은 것은 일 원씩에 팔았다. 그것은 덤으로 받아 온 것이었다.
양잿물 놀이를 하거나 썰매를 타고 팽이를 치다 온 아이들은 가끔 내 엿을 사 먹기도 했다. 대개는 덤으로 받아 온 작은 가래엿을 사 먹었지만, 방앗간집 막내아들은 십 원짜리 굵은 것을 사서 아이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한테 한 토막 나눠 주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엿바구니를 그 자리에 놓은 채 잠시 몸을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집 모퉁이로 돌아가 오줌을 누고 오는 양 자리를 피했지만, 그것은 장꾼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같은 반 친구에게 내 모습을 보이기 싫을 때였다. 동네 아이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학교에까지 광고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뜸할 때는 '학원'을 보았다.
'꺼꾸리와 장다리'도 보고 '얄개전'도 읽었다. 어떤 때는 '삼총사'도 빌어다 보았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 엿이 많이 팔리면 할머니에게 '옥루몽'을 사다 읽어 드릴 참이었다. 밤 늦도록 인절미를 만드시는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 드리면 더없이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할머니의 긴 한숨을 막을 수 있고, 전쟁 때 폭격으로 한꺼번에 돌아가신 엄마와 아빠 얘기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벌써 다 팔았구나, 남은 건 우리가 살게.”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떠들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무슨 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방앗간집 막내아들이 돈을 모으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바구니 속에 남은 엿가락들을 모아 쥐더니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는 돈을 헤아려 보았다. 삼 원이 모자랐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 원에 굵은 것 열다섯 가락을 받아다 십 원에 팔았고, 일 원씩 팔던 다섯 가락은 엿도가집 주인 아저씨가 덤으로 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마워.”
내가 말했다.
“이제 또 받아다 팔 거니?”
방앗간집 막내아들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응, 아직 파장은 멀었는걸?”
내가 빈 바구니를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엿도가집을 향해 뛰었다. 이렇게 빨리 다 팔릴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받아올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백 원어치씩만 받아다 팔라고 하셨다.
나는 달리다가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지금 주머니 속엔 엿 판 돈 백오십이 원이 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으니, 이 돈 모두를 엿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것을 모두 팔면 돈이 얼마가 될까. 백 원에 큰 것 열다섯 가락이었으니까 백오십 원이면? 그리고 덤은 또 몇 개?
그 사이 엿도가집에 다 왔다. 처마 밑으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엿 냄새도 풍겼다. 질척거리는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가래엿을 뽑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큰 소리로 인사했다.
“오, 이 녀석 또 왔구나. 먹을 거냐, 떼다 팔 거냐?”
곰보 아저씨가 말했다. 엿도가집 주인인 곰보 아저씨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떼다 팔 거예요, 백 원어치요.”
내가 말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자 바구니 다오. 굵은 것 열다섯 가락, 그리고 덤으로 잔가락 다섯 개!”
곰보 아저씨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셔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거기 방앗간집 막내아들이 입맛을 다시며 서 있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