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2. 7)

할아버지 댁의 겨울(1)



겨울방학이다, 짠 ! 시골 할아버지 댁에 설쇠러 간다, 짠짠 ! 경일이는 기분이 좋다, 빵 ! 기차를 타고 간다, 빵빵 ! 맘껏 놀다 와도 된단다, 빵빵빵 ! 동생 경완이도 함께 간다. 넥타이 매고 신사복 입고, 할아버지 댁에 설쇠러 간다, 짠짠짠 !
“야, 눈이야 !”
경완이가 창밖을 내다보다가 소리쳤다.
“정말 눈이 오는구나.”
엄마가 말씀하셨다.
“시골 가면 말도 있나 ?”
경일이가 말했다.
“소가 있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토끼는 ?”
경완이가 말했다.
“염소도 있을 거야.”
아빠가 말씀하셨다.
“당신두 참, 말이나 토끼가 있느냐니까 소는 뭐구 염소는 뭐예요 ?"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빤 소야, 소.”
“그래, 아빤 황소란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만 어미소구 ?”
경완이가 말했다.
“그럼, 우린 송아지네.”
경일이가 말했다.
경완이가 차창에 입김을 불었다. 거기에다 뿔을 그리고 동그라미 속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야, 그건 돼지야. 뿔 달린 돼지가 어디 있니 ?”
경일이가 말했다. 경일이가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문댔다. 맑게 닦인 유리창 밖으로 산과 들이 맴을 돈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는 산과 들에 눈송이가 흩날린다.
“나비떼들 같아요.”
엄마가 차창 밖을 내다보며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엔 꽃이파리 같은데 ? 초등학교 운동장에 떨어지던 벚꽃 이파리….”
아빠가 말씀하셨다.
“농촌도 많이 변했어요. 초가집도 하나두 보이지 않네요 ?”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럼, 텔레비전, 냉장고, 없는 게 없지. 전화두 있고, 참 살기 좋아졌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저건 뭐지요 ?”
엄마가 들판을 가리키며 물으셨다.
“비닐 하우스야. 각종 채소에다 버섯, 꽃두 피우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하, 오이랑 상치랑 기르는거구나.”
경완이가 말했다.
“나는 노인정인 줄 알았어요.”
경일이가 말했다.
“노인정 ? 노인정이라니 ?”
아빠가 눈을 크게 뜨셨다.
“있잖아요, 천군사 올라가는 언덕에 의자들 갖다 놓구 지난 여름 그 헌 의자에 노인들이 앉아서 노셨잖아요? 그런데 거기다 비닐 하우스를 지었어요. 그 속에 의자들이 있었어요. 아파트 할아버지들이 그 속에 앉아 있었어요. 난로도 없 이…. ”
경일이가 말했다.
“시골엔 아직 그런 노인정은 없단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세상이 점점 멋이 없어져가요.”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 살아? ”
경완이가 말했다.
“사랑방에 계셔. 붓글씨 쓰시고 시조도 읊으시면서 지내시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야, 우리 할아버지는 불쌍하지 않구나.”
경완이가 손뼉을 쳤다.
“그래, 너희들 자라면 엄마 아빠 비닐 하우스 노인정엔 안 보내겠구나.”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두 노인이 돼? ”
경완이가 말했다.
“그럼,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구, 어른이 늙어서 노인이 되지.”
엄마가 말씀하셨다.
“난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살거야.”
경완이가 말했다.
“나두 그래.”
경일이가 말했다.
“그래, 그래. 지금같이 모두 함께 사는 거야.”
엄마가 경일이와 경완이를 껴안으며 말씀하셨다.
“당신두 참, 그럴 땐 꼭 어린애 같구려.”
아빠가 웃으셨다.